육성준 기자의 사진이야기
조류독감 통제 그리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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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준 기자의 사진이야기
조류독감 통제 그리고 기자
  • 육성준 기자
  • 승인 2003.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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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1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충북 음성군 삼성면에서 조류독감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닭이 발견되었다. 3천여마리가 살처분되는 보도를 접한 것은 다음날 한 지방일간지를 보고 난 후였다. 순간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 '나는 왜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나' 하는 회의와 원망아닌 원망이었다. 속칭 '물 먹었다'(낙종)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후배가 보도한 사진 또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메시지가 강한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전 스케줄을 마친 기자는 이내 타사 후배 기자와 현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는 길인지라 새로 개통된 도로를 두고 구 도로로 가서, 예정시간보다 4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해지기 전에만(노출이 나오려면)도착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어렵게 도착한 기자의 심정은 착잡했다. 상황은 이미 끝나고 살처분하는 그림은 커녕 닭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하는 수 없이 통제를 하는 주변 스케치만 하고 청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몇 일이 지나 지난21일(일요일)에 조류독감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었다. 반경 3km 밖 종계 농가에 이어 10km 지점까지 벗어나, 충남 천안과 전남 나주, 경북까지 급속도로 감염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직업적 사명감이 들었다. 통신사의 빠른 기사를 받지 못하는 소속사의 현실에 주저앉아 사태를 마냥 관망할 수 만은 없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앞서 물먹은 사진이 생각났다. 기자는 곧 장비를 챙겨 최초 발생지인 음성군 삼성면으로 향했다. 그 곳은 아직도 감염된 오리를 살처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곳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으려고 외부인에 대한 통제가 심했고, 기자라고 해서 무작정 들어가는 것도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삼성면사무소에 도착해 감염오리농장의 장소를 파악한 뒤 보건지소에 들러 조류독감 예방 접종과 혈청 검사를 하였다. 또한 역학조사에 필요한 몇가지 서류도 적었다. 그리고는 다시 면사무소 2층으로 향했다. 그곳은 중요 회의를 하기 위한 것인 양, 긴 책상과 수십개의 의자가 정돈되어 있었고 그 자리 위에는 방역복과 장갑 마스크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잘 준비해 놓았습니다.' 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때 황당한 사건을 겪게 되었다. 시간이 부족한 기자는 급한 대로 방역복 2벌을 챙겨 나와 차량으로 향하던 찰나, 마치 도둑을 잡으려는 사람처럼 뛰어 나오는 공무원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은 "당신, 뭔데 그것을 가져가!" 라며 차량 뒷좌석에 있는 방역복을 모두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이내 기자는 소속사와 신분을 밝히고 거듭 전후 사정을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예 기자의 말을 들으려는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럼 도대체 왜 이것을 가져가면 안 되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공무원은 "방역복이 없는데 왜 가져 가느냐."는 되풀이되는 대답이었다. 2층 을 보고 온 기자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한 번 더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공무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두 손으로 방역복을 꼭 감싸안은 채 면사무소로 들어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삼성면의 다른 살처분하는 농장으로 향했다. 물론 성급한 마음이 앞서 아무런 절차 없이 행한 행동이 결코 잘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비상사태인 만큼 필요한 절차에 따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보도에 대한 집착이 강했기 때문에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다른 조류독감 오리농장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소면에 있는 조류독감 농장에서의 반응은 도착한 기자를 더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그 곳에 이미 와 있던 몇몇 방송사 보도진과 취재진은 완벽하게 갖춘 방역복과 마스크, 눈을 보호하는 고글 등으로 현장 취재를 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들도 살처분 근접 촬영은 허가가 나지 않아 주변 현장 스케치만 하는 상황이었다. 재빨리 현장 스케치를 하고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는 다른 기자를 통해 대소면의 다른 조류독감 감염농가를 찾아나셨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오리농장이었다. 물론 통제를 하고 있었다. 방역복을 갖추고 들어갈 수 없냐는 질문에 한 여성 공무원이 음성군청 상황실에 확인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답은 뻔한 것이었다. "절대 NO!" 다시 한 번 기자와 통화를 했다. 그 공무원은 "일본은 자국의 조류독감 기사를 1단 짜리 한 번 나갔고 우리나라 언론들이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해 사태가 더욱 불거졌다"며 흥분된 어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분명 기초 대처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언론 탓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곧 미련을 버리고 그 곳을 나왔다.

근처에서 망원렌즈로 볼 수 있는가, 현장을 둘러보았지만 지대가 높아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미 한 곳은 살처분이 끝난 직후였다.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고 쓸 수 있는 사진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찍어야 한다는 집착증으로 곤혹을 치른 바 있는 기자는 게릴라전을 하듯 이 살금살금 오리 살처분 현장으로 가까이 갔다. 현장과의 거리는 약1m. 그러니까 내 앞에 바로 구덩이가 파 있고 맞은편에서 방역원들이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장면은 너무나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농가의 피와 땀이 섞인 아픔을 뒤로 하고 직업적 성취와 만족을 위해 이것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참을 몸을 숨기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후자 쪽의 생각이 더 절실했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라 생각했기 떄문이다. 그리고는 정정당당하게 일어서서 현장취재를 했다. 이윽고 기자를 본 한 방역원이 발견을 하고 사진을 찍지 말라 했지만, 신분과 소속을 밝히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 곳을 나왔다. 아쉬움과 착잡함 등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다.

자식같이 키운 것인데... 수천마리를 생매장하는 농민의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가축질병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서 완벽한 통제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특히 지난해 진천 구제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통제만 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숨기려고 하는 의도가 더 강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한 병원균에 감염되면 이렇게 되니 철저한 예방이 먼저라는 주의와 경각심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뉴스 가치의 하나인 안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언론을 막는 것은 잘 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어렵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채워주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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