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이름은 반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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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이름은 반고개”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0.08.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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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반고개’ 이름 찾기 운동 벌이는 김근태 씨
국립지리원, 김씨 주장 일부 수용 ‘밤고개’와 ‘병기’
   
 
  ▲ 아랫반고개 토박이 김근태 씨는 ‘반고개’가 원래 지명이라며 6년째 고향 땅 이름 찾기에 매달리고 있다.  
 
김근태 씨(76)는 벌써 6년째 고향이름 찾기에 매달리고 있다. 김씨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아랫반고개’인데 언제부터인지 ‘밤고개’가 돼버렸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청주시와 국립지리원 등 관계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김씨의 주장은 첫째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 청주목 편을 보면 ‘도기소(陶器所)가 둘이니, 하나는 주(州) 북쪽겮??가자골에 있고, 하나는 주(州) 북쪽 쇠목(牛項)에 있다’고 나온다. 우암산을 와우산이라고 했고, 소의 목부분은 현재의 내덕동인데 낮은 데로 드나든다는 의미로 보아 반고개(半峴)가 맞다는 것.

김씨는 “도기터는 실제 청주상고 정문 앞 서쪽방향 150m쯤에 존재했다. 이는 ‘우리나라 도기와 가마터’(송재선)책에도 일제시대 ‘청주군 사주면 내덕리’에 도기공장이 운영됐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둘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밤고개 주막’이 기록돼 있지만 실제 밤고개 주막을 운영했던 사람을 수소문해보니 ‘반고개 주막’이었다는 것.

그는 반고개를 운영했던 사람 김교백 씨는 이미 세상을 떴고 지난해 둘째 딸인 김선분 씨(85)를 만났다고 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녹음기를 통해 김선분 씨의 음성을 들려줬다. “삼거리 반고개 주막이 우리집이었는데, 우리집을 반고개 주막집이라고 불렀어, 반고개 살 때 내 이름은 김춘옥이었는데 왜정 때 이름이고, 현재 이름은 김선분이야.” 김선분 씨는 생생한 목소리로 ‘반고개 주막’이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재차 김선분 씨의 제적등본까지 보여주며 “믿지 않을 까봐 이렇게 녹취도 하고, 등본까지 뗐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6년간 받은 내덕동에 살고 있는 주민 160명의 서명 자료를 보여줬다. 이름, 주소, 주민번호까지 빼곡히 적힌 명단에는 1920년대부터 40년대 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 ‘반고개’가 맞다는 게 동의했다.

학계는 ‘밤고개’ 주장

하지만 김씨의 고향땅 이름 바꾸기 민원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주시는 지난 5월 청주시지명위원회까지 열었다. 이날 한글지명학회회장을 맡고 있는 서원대 박병철 교수는 “1700년대 중후반에 나온 여지도서(與地圖書)에 ‘율봉리’(栗峯里)로 표기된 점을 들어 밤고개가 일차적인 지명이다”고 답을 내렸다.

박 교수는 “마을 이름까지 세세하게 나온 최초의 지도는 ‘여지도서’다. 청주목 북주내면 율봉리라고 나온다. 율봉리로 표기된 곳은 옛 율봉역 부근에서 밤고개 방향이다. 인근 덕평리도 나오는데 여기는 현재의 내덕동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을 이름을 최초로 한자로 표기한 자료가 1914년에 나온 ‘조선지지자료’이다. 여기엔 밤고개를 율현(栗峴)으로, 밤고개 주막을 율현주막으로 두 개 다 표기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씨는 “율봉(栗峯)은 밤톨같이 생긴 봉우리 모양, 즉 동네의 지형을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율봉과 율현은 차이가 있다. 율봉은 율량동을 의미하는 것이지 밤고개가 아니다”고 반발했다.

다만 국립지리원은 김씨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서 ‘밤고개는 밤나무가 많은 고개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고개가 높지도 낮지도 않아서 ‘반고개’가 옳은 지명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기록했다. 이전에는 청주시 내덕동 삼거리 일대를 율현(栗峴)이라고 소개하고, 밤고개에 대한 설화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

김씨는 최근 지병이 악화됐지만 여전히 “고향 땅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눈을 감을 수 없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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