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이제 오르지 말고 걸어 보자”
상태바
“백두대간 이제 오르지 말고 걸어 보자”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08.18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충북환경련 풀꿈강좌⑤ 신정일 사)우리땅걷기모임 대표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모임’ 이사장으로 알려진 신정일 선생의 본래 직업은 문화사학자다. 그가 ‘우리 땅 걷기’를 시작한 것도 문화사학자라는 직업 때문이었다.

1985년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묻혀 있는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펼쳐왔다. 1989에는 아예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160여회나 진행했다.
2005년 설립한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는 이런 그의 이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 신정일 사)우리땅걷기모임 대표
그는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과 만경강, 동진강, 한탄강까지 8대강을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걸어서 답사 했다. 또한 한국의 산 400여개를 올랐으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영남대로와 해남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삼남대로, 서울 동대문에서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까지 이어지는 관동대로 등을 걸었다.

2008년에는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북한 두만강 5478Km 녹둔도 까지 이어지는 1300Km의 구간 중 통일전망대까지 길인 ‘동해 트레일’을 남북한 공동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걸었다. 이후에 북한의 강인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 청천강 예성강 등 북한의 강과 의주로 경흥로 등을 답사하고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일기’의 전 구간을 걷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가 우리나라 산천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산과 물의 자연과 함께 그 안에 녹아 있는 우리민족의 정신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더욱 더 사랑한다.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이 지난 11일 저녁 청주시립상당도서관 강당에서 그의 입을 통해 강연됐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산천 중에도 백두대간에 주목했다. 가장 신령스러운 산인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유장하게 이어진 산줄기 그 백두대간에 여덟 개의 명산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두대간의 여덟 개 명산

그는 “백두대간 첫 번째 명산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백두산이고 수많은 산들을 넘고 넘어 금강산을 만난다. 옛 사람들은 우리나라 2대 명산을 백두산과 금강산으로 보았다. 백두산을  산의 성자(聖子)라 하여 성스러운 산의 으뜸으로 꼽았고 금강산을 산의 재자(才子)라 하여 기이한 산의 으뜸이라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백두대간 세 번째와 네 번째 명산으로 태백산과 소백산을 꼽았다. 모두 흙산이지만 그 흙빛이 모두 수려하다. 태백산 위에 들이 펼쳐져 있어 두메 백성들이 모여 제법 큰 마을을 이루었으니 옛 사람들의 삶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감록’의 구절을 소개하며 태백산의 신령함을 설명했다. ‘푸르고 푸른데 어찌 태백이라 하였던가. 그 위에 당집을 짓고 천왕이라 이름하였네. 신라·고려 때부터 숭상하여 믿었고, 모두 무당과 박수의 도회로세. 저 동쪽을 바라보니 팽나무도 많고 저 남쪽을 돌아보니 크고 높은 언덕도 많네’라며 태백산이 신라·고려 때부터 토속신앙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백산의 ‘백산’ 또한 태백산과 마찬가지로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며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속리산 문장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는 “층이 쌓인 것이 천연으로 이루어져 높게 공중에 솟았고 그 높이가 몇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 넓이는 사람 3000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큰 구멍이 가마솥만한 곳이 있다.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에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한강)으로 들어갔다’
속리산이 삼파수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옛 문헌을 빌어 낱낱이 밝힌 것이다.

   

지리산 또한 명산으로 꼽는데 주저하기 않았다.
지리산은 특히 역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깊은 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중기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는 병년과 흉년이 없는 피난 보신의 땅을 찾는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에는 혁명을 꿈꾸다 실패한 동학도들이 찾아와 후일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들 중 김단야 같은 사람은 조선공산당을 만들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이 지리산에 들어와 수없이 죽어가고 포로가 된 비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지리산은 한민족의 어머니와도 같은 산, 그 이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민족의 성산이라는 것이다.

“자락길이나 둘레길을 조성하자”

신정일 선생은 백두대간의 이름난 산에 ‘둘레길’이나 ‘자락길’을 만들어 친환경 관광자원화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소백산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봉화 닭실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가면 오전약수가 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천하의 명찰 부석사가 있다. 조금 내려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있고 소수서원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순흥향교가 있다. 그곳에서 퇴계 이황이 명한 죽계구곡을 따라가면 초암사가 있고 고개를 넘으면 비로사가 있다. 비로사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중감록의 십승지지중의 한 곳인 금계촌다. 풍기를 지나면 명승지로 지정된 죽령 옛길이고 고개를 넘으면 충북 단양의 용부원리, 단양을 지나면 영춘에 있는 구인사와 온달산성이 있다. 남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 영월군 하동면에 김삿갓의 묘가 있으며 늦은맥이 재를 넘으면 다시 닭실마을에 이를 수 있다. 이 길 약 200km를 개설하면 소백산 둘레길이 되지 않겠는가.”

소백산뿐아니라 태백산, 설악산, 오대산, 속리산 덕유산 모든 산들을 둘레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부안 ‘변산 마실길’ 이나 ‘진안 마실길’도 같은 맥락에서 이름붙여졌다는 것.

‘마실길’은 전라북가 공동 브랜드 길 이름으로 정했다. ‘마실’은 경기도, 충청, 강원, 전라, 경상도 등 제주도를 빼고 우리나라 전역의 공통 방언으로 ‘한가할 때 이웃 마을로 놀러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정일 선생은 자락길이나 둘레길을 산촌 마을들을 이어 조성한다면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녀노소 누구나 백두대간의 산 자락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마루에도 오르고, 실상사. 부석사. 소수서원, 관동팔경, 진전사지, 원산의 명사십리 등 명승지를 감상하며 걷는다면 새로운 국토사랑과 함께 도보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