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슬레“장기파업이 남긴 깊은 상처들…”
상태바
네슬레“장기파업이 남긴 깊은 상처들…”
  • 김명주 기자
  • 승인 2004.01.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 벽두, 청주산업단지 네슬레 공장 정문에는 12월 1일자로 돼 있는 ‘노사 화합하여 다시 뛰자’는 플래카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종전과 다름없이 생산라인은 돌아가고 있었고, 빨간 띠를 두르고 결의를 다지던 그 자리는 생산된 네슬레 제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28일 마라톤 협상으로 노사가 손을 잡은 네슬레는 지난해를 ‘최악의 한해’로 기억한다. 145일 장기파업으로 지친 심신을 쓸어 내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장기파업장이라는 시선을 노사는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무 복귀를 한 후 생산라인 정상화, 연말을 끼고 있어 바빴던 네슬레 측은 새해를 맞아 남겨진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갈 일만 남았다.  
여러 차례 네슬레 현장을 찾아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었으나 노사 모두 쉽게 응해주지 않았다. 노사 모두 자신들의 노출을 꺼려하고, 잠재된 불만이라도 터져나올까 싶어 “지켜봐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업무는 정상화 됐지만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취재하는 내내 엿볼 수 있었다.

아직은 노사간에 치료가 필요한 단계임을 강조하는 한 임원은 “장기파업은 우리에게 장기적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꿰매 논 상태로 그 상처가 아물려면 노사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네슬레 측의 입장이다.

네슬레 사태를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는 한 기업인은 “종전 이미지와 다르게 충북이 ‘강성노사분규지역’으로 인식됐다”며 “순박하면서도 인심좋은 충청도 이미지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네슬레는 지난해 7월 7일 고용 안전과 임금 인상을 노조가 요구했으나 사측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즉 노조를 협상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불신을 심어줬다. 심지어는 노조를 ‘강성노조’로 만든 것이 사측의 책임이라는 책임론도 대두됐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에 너무 빨리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피할 수 없었다.

노사, 노노 간의 긴장감

초창기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던 노사는 장기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로는 이 사태가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라톤 협상 끝에 대타협을 이뤘다. 임금인상에 대해서는 노조가 한 발 물러나 양보하고, 회사측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무너뜨렸다. 영업직은 연봉제 도입과 희망 퇴직 실시는 사측의 큰 성과였고, 노조측은 ‘고용유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45일이라는 공백은 노사간 불신의 벽을 금새 허물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노사간의 불신 뿐 아니라 노조와 비노조간의 불신으로 인한 긴장감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노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마음을 비우고 신뢰를 쌓아갈 준비 과정 또한 길게 느껴진다”는 임원은 특히 노조와 비노조간의 갈등으로 생산라인 분위기를 우려했다. “그래도 우리 때문에 이 정도의 선에서 협상을 얻어냈다”는 노조원측과 “노조원의 따가운 눈초리에 괴로움을 느낀다”는 비노조원측의 분위기가 잠재돼 있다.

파업기간 중 505명의 노조원 중 63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장기간에 걸친 파업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파업이 끝나고 난 후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1인당 400만원, 비노조원들에게는 별도 지급기준에 따라 위로비를 지급하고, 현재는 노사화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 중에 있다. 분기마다 있던 노사협의회도 앞당겨 3월에 추진 중에 있다.

회사측은 “노사간의 불신과 후유증 치료를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해 서로를 믿고 화합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려고 한다”며 “사측에서 먼저 노조측에 손을 내미는 것이 화해의 분위기를 빨리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 입은 노사 양측

파업 기간 중 네슬레 노사는 매출 손실만 500억원, 노측이 위로비 명목으로 400만원을 받기는 했지만 못 받은 임금은 1000여 만원에 달한다. 회사측은 수출물량이 끊기고 생산도 중단됐다. 무엇보다 청주 공장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고 타지역이나 타국에 있는 네슬레 업체보다 뒤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측은 “영업활동을 재개하고 수출 물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손실이 많았다고 해서 직원을 상대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장기파업의 교훈으로 노사가 합의해 잘 이끌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다국적 기업, 인스턴트 커피하면 떠올리던 네슬레 사태 이전의 이미지 재고(再考)를 위해 다시 뛰는 것이 네슬레의 장기적 과제라는 것은 노사 모두가 인정한 사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