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세월 56년, 명절은 고통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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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세월 56년, 명절은 고통일 뿐…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09.15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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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씨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가족·명절 다 잊어”
보금자리 청원농원, ‘축사라도 지을 수 있기를’ 소망

청주 도심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의 청원군 내수읍 원통리. 야산 자락에 작은 마을이 있다. 군데군데 터를 다지고 지은 집들이 몇 채 보이고 마을 한가운데 느티나무 옆 허름한 건물 앞에 노인 대여섯 명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56년전 한센병 발병 이후 단 한번도 고향을 찾지 못했다는 이성규 씨.(사진 가운데) 그에게 ‘고향’이니 ‘명절’이니 하는 말은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도심 인근 마을이라는 것이 어색할 만큼 마을길은 시멘트 포장조차 돼 있지 않았다. 급한 대로 자갈을 깔았지만 잦은 비에 곳곳이 황톳물로 질퍽인다.

오지 시골마을에서도 볼 수 있는 마을회관이나 복지관, 건강관리실 같은 시설은 아예 찾아볼 수 없으며 되는대로 일군 손바닥만한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 고작이다.

마치 세월을 30~40년쯤 되돌려 놓은 듯한 이 마을은 한센인과 가족들이 모여 사는 청원농원이다. 이들은 원래 청원군 가덕면에 터를 잡고 살아왔는데 너무 좁아 5년 전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청원농원 주민들은 21가구 44명. 이중 한센인은 14명으로 정상인이 훨씬 많지만 이들이나 주변 사람들 모두 이곳을 한센마을로 부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시골마을이지만 이들이 견뎌 온 세월의 무게와 아픔의 크기는 신체에 남아 있는 한센병의 흔적으로 어렴풋이 가늠할 뿐이다.
하물며 고운 옷 입고 고향을 찾느라 온 나라가 들썩이는 한가위 명절은 이들에게는 고통일 뿐이다. 매년 그러했듯이 그저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게 넘기지만 버스 몇 번만 갈아타면 고향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부모 임종도 못 봤는데 명절은 무슨…”

이곳에서 만난 이성규 씨(69)는 열세 살 때 발병해 56년을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왔다. 한센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설 용기도 없었고 부모와 형제들조차 그를 보듬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 병원이 한센병 치료를 거부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조제돈 씨. 사진/육성준 기자
“내 고향이 대전 신탄진이에요. 여기서는 지척이지. 그럼 뭐하누. 거기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56년전 몹쓸 병에 걸려 소록도에 들어간 뒤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인 걸.”

그에겐 여동생이 하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 백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며 얼굴조차 기억에서 사라졌다.
아버지 형제는 고모를 포함해 5남매. 사촌들이 제법 많았지만 이들 또한 단 한번도 그를 찾거나 그 또한 찾기를 포기한 채 노인이 돼 버렸다.

“소록도에 간 뒤로 어머니를 두어 번 만난 것 같아요. 지금이야 한센병이 전염도 안되고 완치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어디 그랬나. 문둥이라고 괄시하고 개 돼지 보다도 못하게 취급했지. 그러나 내 부모 원망 안 해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 원망한들 뭘 어쩌겠어.”

그 자신 또한 세상의 벽을 허물기를 포기한 채 살아왔다. 20여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7년 전 아버지가 작고하셨을 때도 꺼이꺼이 눈물만 흘렸을 뿐 찾아갈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몇 십년 전만 해도 한센인들은 대부분 문전걸식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아이들 놀림에 몽둥이질 까지 감수해야 했다.
실제 조제돈 씨(76)는 병원이 한센병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명절이니 고향이니 하는 말은 그와는 상관 없는 남의 일이다. 그저 함께 사는 식구들과 마을 주민들끼리 떡 해 먹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병마보다 더 무서운게 편견

그는 청원농원에서 아내와 아들 내외, 손자손녀 이렇게 6식구와 살고 있다. 이중에서 한센인은 이 씨 본인 뿐이다.

“우리 집 뿐 아니라 마을주민 44명 중 한센인은 14명 뿐이에요. 전염도 유전도 되지 않는다는 게 분명하게 증명된 거죠. 또 이제는 치료약도 좋아져서 완치도 됩니다. 아들 내외도 오창산단에 있는 공장에 다니고 손주들도 학교에 다녀요. 하지만 말예요 한센인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요.”

그는 청원농원이 전국 87개 한센인마을 중 가장 낙후됐다며 이 또한 편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6년전 가덕에서 이주해 올 때 인근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고 지금까지 축사 건축이 불허되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 연락이 끊긴 자식을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표재홍 할머니.
“가덕에 살 때는 땅이 비좁긴 했지만 양돈을 통해 지금보다는 생활이 많이 나았어요. 그런데 넓은 땅을 찾아 이곳으로 오면서 반대 민원에 시달려야 했고 지금까지 축사를 짓지 못하고 있죠.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살아갈 뿐이에요. 그나마 연락이 두절된 자식을 이유로 표재홍 할머니는 수급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어요.”

포장되지 않은 마을길이나 마을회관 조차 없는 현실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게 이곳 주민들의 주장이다.

“아직도 한센인 출입을 거부하는 식당이 있고 징그러운 벌레 피하듯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센병에 대한 정확한 사실이 증명된지도 몇십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상의 벽은 허물어질 줄 모르네요.”

‘명절 보내러 고향 가지 못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은 이들이 지고 살아온 삶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한 사치스런 호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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