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야만 명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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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야만 명절인가요?”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09.15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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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일에 매달려도 행복한 4명의 여성

명절의 대표적인 풍경은 고운 옷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고향을 찾는 모습이다. 그 만큼 명절은 여유와 풍요, 가족간의 정을 상징한다.

대부분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명절이지만 결코 쉴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시장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치안 현장에서 이들은 명절을 반납한 채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그 일을 놓을 수 없다.

더욱이 추석 명절에 쉴 수 없는 여성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더 큰 애착과 자부심을 느낀다. 명절증후군에 시달린다는 뉴스의 대상인 여성이 바로 ‘반드시 해야 하는 그 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돈 벌려고요? 글쎄요”
청주육거리시장 과일장수 박영자 씨

   
▲ 청주육거리시장 과일장수 박영자 씨.
올 해에는 날씨 탓에 과일 출하가 늦었다. 그렇잖아도 추석명절이면 햇과일이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데 올해는 더 잘 모셔야 할 판이다.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박영자 씨(59)는 오른 과일 값에 자신의 매출 보다 단골들의 주머니를 먼저 걱정한다. 포도 5㎏ 한 박스에 2만3000원, 사과는 15㎏ 한 박스에 7~8만원은 줘야 질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계속돼 그나마 다행이다. 비가 내리면 과일 빛이 좋지 않고 제대로 익지도 않는다. 당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산지에서 작업하기도 힘드니 대목을 앞두고 가격만 크게 올라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명절 대목에 팔 과일을 받으며 꽤나 신경을 썼다. 제대로 팔려면 같은 값이라도 최대한 좋은 물건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만족하며 과일을 사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여름 날씨도 그렇고 매일 내리는 비도 그렇고 단단히 마음 먹지 않으면 낭패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명절을 맞아 점포 가득이 과일을 쌓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사과며 배, 포도, 복숭아, 수박, 물 건너 온 바나나며 파인애플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추석날 단골손님 때문에…

그의 추석은 그렇게 명절 대목을 준비하며 이미 시작됐다. 고운 옷 차려입거나 선물 보따리를 들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애초에 계획에 넣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이곳에서 과일 장사를 하고 있는 지난 10년 동안 추석 명절을 쉬어 보지 못했다. 하나라도 더 팔려는 돈 독이 오른 여자 취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추석 당일에도 그녀를 찾는 단골이 있기 때문이다.

“과일은 다른 품목과 달라 추석당일이나 그 다음날 까지 찾는 손님들이 있어요. 단골이 찾아왔는데 문이 닫혀 있으면 안 되잖아요. 명절 매출이 많지는 않지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아야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때문에 남들처럼 가족들끼리 여유로운 추석 보내기는 애초 단념했다. 35년 전 청주에 정착하면서 고향인 전남 진도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대신 그에게는 그를 찾는 손님과 과일을 팔아 키운 자식들, 그리고 소중한 가정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여유 보다 분주하고 바쁜 대목이에요. 물론 돈 벌 욕심도 있지만 시장을 찾는 손님들에게서 명절의 즐거움과 활기를 느끼죠. 그래서 쉬지 못하고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지 못해도 그리 서운하지 않습니다.”
 
“명절증후군요? 그런 거 몰라요”
청주역 역무원 장순인 씨

   
▲ 청주역 역무원 장순인 씨.
“명절요? 쉬겠다는 기대는 아예 안 하는 게 속이 편해요.”
충북선철도 청주역에 근무하는 장순인 씨(42)는 마지막으로 집에서 보낸 명절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올 추석 연휴도 당연히 근무다. 21일과 추석인 22일은 주간 근무고 23일은 야간근무다.

1988년 당시 철도공무원으로 시작한 직업이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그녀 몸에서 명절의 설레임은 사라져 버렸다. 역무원 유니폼에 창구에 앉아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발권하고 요금을 수납하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유니폼을 벗고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이자 주부,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 남매의 엄마이기도 하기에 명절은 그가 가족에게 가장 미안해하는 기념일이 되다시피 했다.

“어른들께는 정말로 죄송하죠. 철도공사라는 회사가 다른 직장처럼 낮에만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밤샘 근무를 밥 먹듯이 해야 하고 휴일을 따로 챙길 수도 없어요. 명절이든 휴일이든 짜여진 시스템대로 주간과 야간근무를 반복해야 하니 며느리로서는 좋은 점수 받긴 글렀죠.”

그렇다고 며느리 노릇 하겠다고 명절 연휴근무를 동료와 바꿀 수도 없다. 여성으로서 배려를 바랐다면 애초에 이 직업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나마 아이들이 크면서 이런 엄마를 이해해 줘 고맙기만 하다.

일도 즐겁게 하는 친절 직원

그가 맡은 업무는 매표다. 충북선철도가 이용객이 적다고는 하지만 매표 창구의 일은 큰 역이나 다를 바 없다. 아침 6시 43분 첫 차부터 밤 10시 11분 막차가 떠날 때 까지 수많은 고객을 만나야 하는 게 그녀의 일과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고객들이 선정하는 친절한 직원 명단에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한다.

김영진 청주역장은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다 친절과 웃음이 몸에 배어 있다”고 그녀를 소개했다.
그래서일까 주간과 야간근무를 잇따라 해야 하는 추석연휴 근무에 대한 서운함도 “주부들이 겪는다는 명절증후군 같은 건 몰라요”라고 웃어 넘긴다.

그도 그럴것이 명절연휴면 더욱 바빠지는 것이 철도공사이기 때문에 명절 음식준비나 설걷이 같은 평범한 주부들의 일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일이 편하고 즐거워져요. 까다로운 손님들을 만나도 불쾌하거나 짜증 내면 결국 저만 더 힘들어지거든요. 명절근무건 야간근무건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대목을 찾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서 김 역장의 말처럼 긍정과 친절이 생활화 돼 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 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제 직업이잖아요. 철도 이용 손님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고향을 찾아가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죠.”

“현장에서 보낼 추석 오히려 기대돼요”
하이닉스반도체 오퍼레이터 윤선영 씨

   
▲ 하이닉스반도체 오퍼레이터 윤선영 씨.
섭씨 1000도 이상에서 쇠를 녹여 철판이며 철근을 생산하는 용광로는 불을 끄지 않는다. 다시 가열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비 또한 마찬가지. 눈 깜빡할 정도로 전압이 불안정해도 불량이 쏟아지는 특성상 연휴라 해도 생산라인 가동을 멈출 수 없다. 때문에 설비를 운용하고 관리하는 근로자 또한 연휴를 반납해야 한다.

입사 6개월 차인 윤선영 씨도 황금 같은 추석연휴를 반납해야 하는 하이닉스반도체 오퍼레이터다.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셋, 친구 만나 수다 떨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고향의 부모님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토해낼 나이다.

앞뒤로 주말을 포함하면 최대 9일까지 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지만 그는 정확히 추석연휴에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황금연휴 즐기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연휴 반납도 쿨하게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양산. 버스로 부산까지 간 뒤에 또다시 갈아타야 하는 5시간 넘는 먼 길이다. 연휴 이후에 교통체증 없이 가면 된다고, 오히려 잘 됐다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더욱이 그는 부모님과 떨어져 명절을 보내야 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생면부지 타향이기 때문에 청주에는 일과를 마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없다. 기숙사와 그가 일하는 현장, 그리고 식당을 오가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연휴 동안 쉴 수 있는 행운을 잡은 동료들이 집으로 떠날 터이니 그야말로 쓸쓸한 명절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청주 시내에 나들이 가 본 것도 몇 번 안돼요. 추석 연휴 동안은 상가들도 대부분 문을 닫을 테니 회사에 꼼짝없이 머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근무가 아닌 시간에 읽을 책을 미리 사 놨지요. 핑계 김에 독서를 통해 부족했던 마음의 양식을 저장 해야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배시시 웃는다. 그래도 젊은이답게 명절 연휴를 반납해야 하는 상황도 ‘쿨하게’ 받아들인다.

“추석에 부모님 찾아뵙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일 때문인데 할 수 없지요. 오히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명절을 보내는 게 어떨지 기대가 되는걸요.”

그러면서 아직 벗지 못한 새내기 사원의 당찬 포부도 살짝 드러낸다. 남들 쉴 때 회사에 남아 일을 한다는 게 결코 나쁘지는 않다고.

“어엿한 회사원이 된지 6개월이나 지났잖아요. 아직은 배워야 할 게 훨씬 더 많지만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자원한 건 아니지만 추석연휴 동안 일을 하게 된 게 결코 싫지만은 않아요. 실수투성이 신입사원이지만 이렇게라도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죠.”

“명절엔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 합니다”
청주상당경찰서 사천지구대 신주영 경장

   
▲ 청주상당경찰서 사천지구대 신주영 경장.
청주상당경찰서 사천지구대로 신주영 경장(29)을 만나러 간 시간은 저녁 6시 40분. 신 경장은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야간근무였다. 지구대를 찾았을 때 팀장으로부터 공지사항과 주의할 점, 특히 명절을 앞두고 순찰에 각별히 신경 써 줄 것 등을 전달받고 있었다.

신 경장을 포함한 이날 근무조는 역시 추석 연휴에도 쉴 수 없다. 반복되는 근무에 어떤 때는 오늘이 며칠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명절연휴는 쉬면 좋고 못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해요. 경찰관이 일일이 휴일을 챙기겠다고 하면 말이 안되죠.”

신 경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앳된 얼굴이지만 경찰관으로서의 일상이 익숙해진 경력 6년차의 만만찮은 여경관이다.

“지난해 까지 내근하는 부서에서 일했어요. 지난 2월부터 지구대에서 근무했으니 이제 8개월째네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실수도 하고 많이 배우고 있죠.”

관할구역 순찰은 그렇다 치고 폭력이나 강도 등 강력사건을 여성이 처리하기는 역시 부담일 터. 하지만 그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은 해야겠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손사래쳤다.

“용의자가 난동이나 인질극을 벌인다면 남성 경찰관도 혼자서는 제압하지 못하죠. 여성 경찰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오히려 주민들과의 접촉이 많은 지구대 근무는 여성 경찰이 더 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추석연휴가 끝날 때까지는 특별히 방범순찰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기간이다. 더욱이 사천지구대가 관할하는 지역은 대단위 아파트와 주택가, 상업지역 등이 밀집돼 있다.
명절을 전후해 빈집털이나 각종 사건사고 발생이 우려되는 만큼 그는 명절 기분을 낼 수도 내서도 안 된다.

"사건 해결보다 예방이 중요"

하지만 그도 우리나이로 서른. 잦은 야간근무에 아직도 짝을 만나지 못했다며 부모님이 걱정을 쏟아내는 평범한 여성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부모님이나 주변의 걱정은 고맙지만 그 보다는 경찰관으로서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구대 근무도 자청했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강력이나 폭력 같은 수사 부서에서도 일을 하고 싶어요.”

그가 경찰이란 직업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순찰이든 지구대를 찾은 민원인이든 주민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 해결해 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명절이니 휴일이니 하는 것들에 신경 쓰다보면 경찰관으로서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건사고는 평일에만 발생하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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