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대와 공무원 특채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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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대와 공무원 특채비리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0.09.15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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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정치·문화부장

갑오경장으로 노비제도가 철폐됐고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세습제도는 사라졌다고 배워온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세습이라고 해야 북한의 권력이 부자 승계됐고 이씨나 정씨 같은 재벌가가 대대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게 전부인줄 알았던 순진한 국민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을 외교관으로 특채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만 해도 그저 부도덕한 개인의 비리려니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대한민국에는 외교관이라는 특수신분을 세습할 수 있는 교묘한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채로는 채용에 한계가 있자 외국에서 초등학교 이상 정규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는 외무고시2부를 만들었고 그 합격자의 41%는 전·현직 장차관 및 고위직 외교관의 자녀였다. 어느 외교부 장관은 시험과목을 자신의 아들에게 유리하게 바꿨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평민들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지역이라고 깨끗할 리 있겠냐는 눈 흘김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정부도 감사원을 통해 전국 지자체의 특채제도 운용과 관련해 정보수집 및 감사에 나선다고 한다.
민선1기 유봉렬 전 옥천군수는 1995년 자신의 딸을 일용직으로 특채한 뒤 다시 일반직(환경직) 공무원으로 특채했다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제도가 정비돼 지역에서는 특수경력직(별정직 등)이 아니고서는 공무원을 특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 대신 선거유공자나 자신의 친인척 등을 별정직 의전담당이나 비서, 보좌관 등으로 취직시키는 것은 관행화되다시피 했고 이는 제도적으로도 보장을 받고 있다. 다만 이들은 임기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단체장이 낙선하게 되면 함께 떠나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확인해보니 극히 일부지만 그대로 별정직에 남아있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경우도 있었다.

무기계약직은 공무원이 아니다. 하지만 별정직 공무원과 달리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년을 보장받는다. 총액인건비 안에서 사실상 부서장(실·과장)들이 채용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윗선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도내 시·군에서 무기계약직인 청원경찰 등의 채용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유공자를 비롯해 전·현직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하다못해 이장협의회장 아들까지도 청경에 특채돼온 것이 현실이다.

아예 채용 시스템을 바꿔가면서까지 왕후장상의 지위를 세습하는 중앙에 비하면 대단할 게 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지역의 특채 논란은 중앙의 소위 로열패밀리를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해온 배타적 순혈주의와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정당하지 못한 특채에도 중앙과 지방의 차별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지역의 그릇된 특채 관행을 눈감아 줘서는 안 된다. 당장 취업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이 평균 88만원이라는 이른바 ‘88세대’의 상당수가 취업예비군으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안정적이라는 공무원 취업을 위해 학원가를 전전해야하는 ‘공시족’들로서는 분통이 터지다 못해 맥이 풀리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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