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해외 유학이 흔치 않던 시절 부모님 덕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지금이야 어느 나라를 가든지 우리나라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파란 눈의 하숙집 아줌마와는 말도 안통하고 음식은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아 북어 마르듯이 말라가고 외로움에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앓아누우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됐다. 음식도 안 맞고 심적으로 힘들어 학교도 안가고 침대에 누워 겨우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캐나다에 온 후 맡아 보지 못하던 밥 냄새가 어디에선가 나는 것 아닌가.
밥 냄새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보니 냄비에 밥이 끓고 있었다. 비록 우리나라 쌀과는 달리 길쭉한 쌀이었지만 한 냄비를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시아인이 거의 없던 동네에서 밥을 하게 된 이유는 늘 거북하다고 생각했던 파란 눈의 하숙집 아주머니가 앓아누운 동양인 학생을 위해 물어물어 2시간 거리에 마트에서 어렵게 쌀을 구해 밥을 한 것이었다.
핫 소스에 밥 두 공기를 비벼 먹으면서 사람을 대하는 나의 생각과 삶에 대한 방향은 바뀌었다. 파란 눈의 아주머니가 해주신 밥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본질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로도 해외에서 10여년간 지내면서 진심은 어디서나 통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해 서로를 돕는 것은 문화를 초월해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기부문화와 자원봉사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캐나다와 미국 사람들의 삶 속에서 진솔하게 배어나오는 봉사의 실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사람에 대한 인정이 모자라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때로는 그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누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상에 젖어있다 보면 너무나도 나만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정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박해지는 것 같다.
추워지면 나오는 자선냄비에 부끄럽지 않고 어려운 친구의 전화를 다정히 받아주고, 방송에 나오는 3천원 기부 전화를 주저하지 않으며, 회사에서 가는 봉사활동에 한발 앞에 나서며, 아파트 옆 동 어르신에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낼 줄 알고,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두 배로 전해줄 수 있길 스스로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