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교전 당시 개성서 밤 지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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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교전 당시 개성서 밤 지새워”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12.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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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서 체육시설 관리하는 김대경 씨

지난달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수백발의 포탄을 발사하던 순간 개성공단에 머물던 김대경 씨((주)명진C&C 대표). 당시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아찔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지난해부터 개성공단 안에 테니스장, 골프연습장 같은 체육시설과 야외 운동기구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이 날도 그는 개성에 들어가 테니스장 시설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오후 4시쯤 관리위원회 남측 직원이 북한군의 폭격사실을 전해 줬어요. 상황이 심상찮다며 가족들이 걱정할테니 청주 집에 전화해 안부라도 전하는 게 좋겠다고 귀띔하는 거예요.”

그 때만 해도 그는 별 일이야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개성공단의 분위기는 전과 다를게 없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들에게도 다른 분위기를 읽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날 저녁 자주 가는 북측 식당을 찾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까지 했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숙소로 돌아와서야 남측 사람들만 시청할 수 있는 TV를 통해 북한의 민간인 폭격과 확전가능성을 확인하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전화하는 것도 포기했다. 혹시 아내나 가족들이 북한 도발을 비판하는 말이라도 하면 자칫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던 것.

“북측이 남측 사람들의 전화를 감청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잘못하면 상황이 더욱 안좋아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행히 그는 다음날 아무 문제없이 개성을 나왔지만 11월 23일 밤새 몸을 뒤척이며 긴장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는 이번 북한의 도발로 남북 교류도 크게 위축되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개성공단 조성 초기에는 5000명이 상주했다고 해요. 그러나 지금은 기껏해야 700명 정도죠. 사용하지 않는 대형 건물도 많고요. 군사적 긴장관계는 심각한 충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남북교류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죠. 불안한 상황이 빨리 해소되고 개성공단이 예전처럼 활력 넘치는 남북 교류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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