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의 실력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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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실력과 양심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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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곧잘 인용하는 것이 대학 교수들의 코멘트다. 특정 이슈에 대해 교수들의 논평을 곁들이면 그만큼 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맞는 얘기다. 교수들은 전공학문의 깊이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고, 그들의 얘기는 일반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어필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력이 있다해서 모든 것이 다 옳으냐는 점이다.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강변한다.

청주 청원 통합문제가 다시 지역을 달구고 있다. 청주시장과 청원군수가 서로 핑퐁식 회견을 주고받고 있고, 이곳 시민과 군민들은 졸지에 이들의 발언을 좇느라 헷갈린다. 하지만 한대수시장이나 오효진청원군수를 더 이상 언론에서 안 보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들이 회견에서 밝히는 각각의 논리는 자신들의 주장이지 시민이나 군민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시민과 군민들은 오히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터져 나온 통합공방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시군 통합논란이 유독 청주 청원에서만 때가 되면 나타나 유령처럼 헤집고 다니기까지는 사실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동안 양 자치단체는 이 문제와 관련 숱한 용역을 수행했지만 결과는 천편일률적이었다. 청주쪽 용역은 통합 당위성을, 청원 쪽에선 분리 당위성을 항상 결과물로 제시해 왔다. 이 용역들은 당연히 유수대학의 교수들이 주도했고, 그 결과는 곧바로 양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는데 전가의보도처럼 활용했다. 여기서 궁금증은 시작된다. 물론 학자간에 의견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용역 책임자가 바뀌어도 매번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학자들의 양심 문제다. 결론적으로 이미 '결과'를 설정한 자치단체에 교수들이 이용당하다는 꼴이다.

이번에도 특정시를 천명한 청주시나 청원시 추진을 선언한 청원군이 또 용역을 발주할 조짐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말이다. 나는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력 주장한다. 용역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전문가, 그리고 시민과 군민들의 공개토론을 여러번 가지라고 충고한다.

지방자치가 도입된 후 행정추진에 있어 새로운 형태의 주도세력이 등장했다. 자치단체장과 학자들로 대표되는 전문가 집단, 그리고 언론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트라이앵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자치단체장이 특정 정책을 발표하고 전문가가 이와 관련한 용역을 수행한 후 언론이 그 당위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그 정책은 그대로 시행되는것이다. 3자가 의기만 투합하면 무슨 일이든 밀어붙일 수 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가설이 아니라 지금 전국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자치단체가 정확한 진단도 없이 의욕적으로 시행했다가 고스란히 사장시키고 있는 전국의 각종 정책사업이 바로 이로 인한 부작용인 것이다.

한대수 청주시장과 오효진 청원군수에게 주문한다. 이런 오류를 범하기 전에 통합논란의 주도권을 시민과 군민들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언젠간 본인들의 '고집'이 지역에 엄청난 민폐를 끼칠 것이다. 아울러 용역에 참여하는 학자들의 양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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