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기업 근로자 빠져나간 밤의 유령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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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기업 근로자 빠져나간 밤의 유령도시
  • 김진오
  • 승인 2010.12.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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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이주 기피, 나홀로 족 아파트 대신 원룸 선호
역세권 개발 실패, KTX 타고 지역경제 고속 유출

미리가 본 2014년 오송
물거품 된 장밋빛 청사진

2014년 어느 금요일 밤. KTX 오송역 플랫폼에는 20여명의 30~40대 직장인이 서울행 고속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등 2010년에 이전한 국책기관과 연관 기업체 직원들이다. 매일 출퇴근을 위해 KTX에 몸을 맡긴지 5년, 피곤에 절은 몸은 주말을 학수고대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서울과 오송을 오가는 쳇바퀴 생활에 권태감만 쌓여간다.

서울 집이 고속열차가 서는 역과 가까워 출퇴근이 가능한 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오송에 방을 구해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한다. 강북 끝자락에 산다는 한 직원은 고속열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1시간 반이나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야 해 출퇴근은 엄두도 못 낸다. 그렇다고 번듯한 집을 얻어 두 집 살림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자그마한 원룸을 임차해 생활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새벽에 집을 나서면 빨라야 다음 금요일 밤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어느새 유치원에 다니고 맞벌이하는 아내는 전쟁 치르듯 직장과 집안일을 도맡아 왔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릴 수 없어 5년을 버텼지만 점점 지치고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출퇴근 족’이나 ‘나홀로 족’들이 가족을 데리고 오송으로 이사 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서울에 비해 집값이 훨씬 싸지만 아이들 교육이며 주변에 여가를 즐길 시설도 변변찮다. 몸이 좀 고되더라도 가족을 서울 집에 그냥 두는 게 나중을 위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정주여건 조성 실패 탓

6대 국책기관이 오송으로 이전하고 오송1·2산단과 첨복단지에 연구기관과 기업 입주가 계속되고 있지만 신도시다운 모습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각종 상업과 의료, 문화시설로 들어차야 할 오송역 주변은 드문드문 일반 상가가 지어지고 있을 뿐이고 그나마 임차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는 곳이 더 많은 지경이다. 1만2500세대 아파트 주민들은 영화를 한편 보려고 해도 청주로 나가야 하고 백화점 쇼핑이나 여가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물며 서울생활에 익숙한 기관이나 기업체 직원들이 오송으로 이사하는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다. 아파트 주민 대부분이 청주 등 인근에서 살다 분양 받아 온 경우고 제2산단에 분양중인 아파트는 주인을 찾지 못한 미분양 물량이 언제 해소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충북도가 오송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을 통해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신도시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송 역세권 개발을 위한 민자유치에 실패함으로서 활력을 잃은 회색도시로 전락해 버렸다. 출퇴근이 불가능한 직원들이 모여있는 원룸촌 주변 상가만이 밤에도 불을 밝힐 뿐 대규모 상업과 문화, 의료시설이 들어차 북적이어야 할 역 주변은 유령도시를 연상케 한다.

KTX는 오송을 거점으로 한 충북 경제의 블루칩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지역경제가 서울 등 대도시로 유출되는 고속 통로가 돼 버렸다. 2014년 개통된 호남고속철도도 이같은 부작용을 부추길지 역세권 개발의 호재로 작용할지 여전히 미지수다.

이는 오송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이 현실화 되지 못한 채 말 그대로 ‘계획’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송역세권 개발을 위해 민간자본을 유치하지 못했고 정부도 첨복단지 조성과 운영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시너지의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주여건 미흡은 종합병원과 대형 백화점, 보건·의료분야 교육기관 등의 건립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
새로운 땅에 보건·의료와 바이오 등 첨단산업과 행정, 여기에 상업과 문화라는 콘텐츠를 적절히 심어야 했지만 실패함으로서 중부권 첨단벨트의 허브, 충북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물거품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오송의 열쇠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
아이디어·홍보 위해 국제공모, 실현가능성이 중요

정부와 충북도의 선언대로 2020년 세계 7위의 HT(Health Technology)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오송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보건·의료 분야 국책기관이 이전을 마쳤고 첨복단지 조성에 정부와 충북도의 적극적인 지원이 예정돼 있다. 또 이와 연계한 오송1·2산단의 성공에도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첨복단지와 1·2산단, KTX 역세권을 얼마나 조화롭게 조성하느냐다. 충북도는 이를 ‘오송 바이오밸리’란 이름을 붙이고 마스터플랜 수립에 나서고 있다.

마스터플랜이 얼마나 현실에 맞게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수립되느냐에 따라 오송의 미래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충북도의 어깨가 무엇보다 무겁다.
그동안 각종 계획은 연구용역을 통해 구체화 된 뒤 확정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단일 기관에 의한 연구용역은 실현가능성 등 곳곳에서 한계가 드러났으며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의 면피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를 의식한 듯 충북도는 오송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은 아이디어 수준의 국제공모와 이를 토대로 한 책임있는 연구용역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국제공모를 통해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세종시 도시개념과 첫마을·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 새만금 종합개발 기본구상, 인천국제도시설계 등을 벤치마킹해 빠른 시일내에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시계획 분야의 한 관계자는 “오송이 보건의료 분야 행정기관이 밀집한 산업단지에 머무느냐 충청권 핵심 첨단도시로 성장하느냐는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에 달려 있다. 철저히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계획을 수립해 지역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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