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치킨’과 ‘밴댕이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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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치킨’과 ‘밴댕이치킨’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12.23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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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경제·사회부장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롯데마트의 5000원짜리 ‘통큰치킨’이 갖가지 뒷 얘기를 남기고 있다. 처음에는 대기업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동네 치킨업계에 융단폭격을 가한다고 비판하더니 금새 하루에 300마리를 판매하겠던 약속을 어기고 180마리만 판다는 원성이 쏟아졌다. 그러다 롯데마트가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하자 기존 치킨 전문점의 가격에 거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첫 번째는 그동안 대형할인점에 가해졌던 비판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두 번째는 시중의 3분의 1 가격에 치킨을 사기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선 고객들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의 논리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기존 치킨 전문점의 가격 거품 운운하는 뒷말은 논리비약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해 씁쓸함을 남긴다. 더욱이 ‘2주에 한번쯤 치킨을 먹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다’는 대통령의 말까지 더해지며 통큰치킨 해프닝이 치킨의 적정 가격논란으로 이어졌다.

롯데마트가 5000원에 파는 치킨은 ‘통큰치킨’이고 동네 치킨전문점의 1만5000원짜리는 ‘밴댕이치킨’이 돼버린 셈.

어떤 사람들은 통큰치킨을 옹호하기도 한다. 대기업이 시중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면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 서민들이 이득을 얻는 만큼 나무랄 일이 아니며 통큰치킨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모습에서 이같은 사실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또 동네 치킨전문점 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불특정 소비자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도 덧붙인다.

이 논리대로라면 롯데마트는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생각해 싼 가격에 치킨을 공급하는 착한 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대기업 특히 대형할인점이 어떻게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고나면 다시는 이같은 논리를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물량공세를 쏟아 붓고 유통과정에 개입해 가격을 낮춘다. 농산물의 경우 소위 밭떼기를 통해 물량을 확보하고 산지가격이 폭등하면 내팽개쳐 버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농민은 잘해야 본전이다. 산지가격이 올라도 당초 계약한 대로 팔 수밖에 없고 자연재해 등으로 생산량이 떨어지면 또 그만큼 손해를 입는다.

지역의 한 유통업체 대표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기업이 왜 SSM을 늘리기 위해 애쓰는지 아는가. 물건을 판매해 적자가 나더라도 이들에게는 이를 보전하고 더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물류라는 무기가 있다. 물건도 팔고 물건을 배달해 이중의 이익을 남긴다.”

이런 구조 탓에 5000원짜리 통큰치킨이 가능한 것이다. 만일 통큰치킨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크게 확장되면 동네 치킨전문점은 모두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지역 중소업체는 발 붙일 곳이 없어진다. 결국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익숙해지면 종국에는 더 큰 손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갖가지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최근 청주시가 14개 재래시장으로부터 500m 이내에 대형마트 입점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제정한 대형마트 입점제한 조례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재래시장 대부분이 공동화 현상을 빚는 옛 도심에 위치해 있어 대형마트 입지로 부적합하다는 점에서 이 또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비판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통큰치킨을 사기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는 아이러니가 속에 재래시장과 동네상권을 지키지 위한 묘안은 어디에 있을까. 소비자의식, 시민의식부터 바로세우자는 진부한 논리를 또다시 펴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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