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낭비 부르는 무자격 ‘페이퍼 전문건설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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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낭비 부르는 무자격 ‘페이퍼 전문건설업체’
  • 윤상훈 기자
  • 승인 2011.03.03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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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인력조차 갖추지 않은 채 면허만으로 각종 공사 응찰…하청비리 부채질

지자체가 발주하는 관급 건설 공사 입찰에 장비도 갖추지 않은 이른바 ‘페이퍼 업체’들까지 대거 참여해 부실 시공과 예산 낭비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제천시와 충북도에 따르면 공공 도로에 대한 차선 공사 시 예산이 1억 원을 넘는 경우 발주처는 도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이 경우 영세한 지역 업체의 참여 기회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대부분의 도색 공사를 1억 원 미만으로 분할 발주하고 있다.

▲ 제천시에 소재한 18개 차선 도색 관련 업체 중 12개 사가 장비와 인력을 갖추지 않은 이른바 ‘페이퍼 업체’로 드러났다. 이는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져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가 가능한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지역 업체를 밀어주고 있음에도 지역에 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업체들이 낙찰되는 사례가 빈번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현재 제천시에 등록된 차선 도색공사 관련 업체는 모두 18개 사. 이 중 관련 장비와 인력을 갖추고 능력을 검증받은 업체는 6개 사에 불과하다. 나머지 12개 사는 기초 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채 면허만 보유한 사실상의 유령업체들이다.

결국 어느 업체가 낙찰받더라도 실제 시공은 장비와 인력을 갖춘 6개 업체들의 몫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행히 6개 사 중 한 곳이 원청사로 낙찰될 경우에는 시공비와 이윤이 적정히 배분될 수 있다. 그러나 페이퍼사가 낙찰한 공사는 총 낙찰가의 70% 선에서 시공 능력을 갖춘 업체에 하청 발주되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낙찰가의 70% 가격에서 시공원가에 이윤까지 확보해야 하는 하청사로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숙련도가 떨어지는 일용직 비중을 늘리거나 규정에 맞지 않는 값싼 재료로 시공하는 편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이는 야간이나 우천 중 차선 식별력을 떨어뜨리거나 차선 도색 부위의 마찰력 감소를 초래해 교통사고의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주민의 혈세 중 상당액은 페이퍼 시공사의 불로소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실제 시공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급여는 원가 산정 금액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까지 한다.

차선 도색공사 현장에서 3년 이상 근무한 A씨는 “면허 외에는 기초적인 장비도, 인력도 갖추지 않은 업체들이 낙찰될 경우 하청 공사비는 시공원가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며 “이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돈은 원가 산정액의 40~50%에 불과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차선 도색 분야의 문제는 다른 건설 분야에 비하면 오히려 나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서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폭로한 4대강 건설 현장의 불법과 노동 착취 실태에서 볼 수 있듯 관급 건설이 불법 하청과 재하청을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가히 복마전을 방불케 한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 건설업계의 경우 면허뿐 아니라 관련 장비와 전문 인력 같은 실질적 시공 능력을 평가해 자격 없는 업체를 관급 공사 응찰 대상에서 영구 퇴출하는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대형 건설사의 경우에도 하청에 대한 온갖 불공정 행위와 불법 로비, 공사비 부풀리기 등 3대 불법 구조가 통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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