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핵재난과 에너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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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핵재난과 에너지 정책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3.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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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쓰나미에 이은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이 일본열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은 지진과 태풍이 잦은 나라로서 재난에 대한 철저한 대비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나라이며, 재난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질서 있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나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진도 9의 지진과 뒤이은 가공할 쓰나미는 이런 모든 대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수만명에 이르고 이재민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쓰나미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 원전의 기능정지와 방사능 대량 유출이라는 상상하기 싫은 재앙의 현실적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과 함께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일본 정부와 전력 산업 대변자들은 철저한 안전장치로 일본에서 심각한 원전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지진과 동시에 발생한 쓰나미는 원전의 냉각수 펌프를 가동시키는 비상 전력장치를 모두 무력화시켰다. 일본 정부와 원전 관계자들은 내진 설계만 믿고, 지진이 일어나도 냉각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쓰나미에 의한 침수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노심 용융(멜트 다운)이 진행되고 체르노빌과 흡사한 사고의 현실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후쿠시마 원전의 기술적 안전성에 대해 과거에도 전문가들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에서 1971년 설계된 것으로 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해 미 원전 전문가단체에서 이미 폐쇄를 권유받았다는 사실과 수명이 다된 원전을 연장 가동해왔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즉 일본의 안전신화와는 달리 후쿠시마 원전의 궁극적 안전성은 이미 그 전부터 의문시 되어 온 것이다.

사태의 전개과정에서도 일본 정부와 원전 관계자들의 태도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즉시 국제원자력기구나 국제사회에 기술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 발표하는 데 급급하였다. 그리하여 한꺼번에 대처해야 할 1, 2, 3호기 원전에 대해 긴급 상황이 발생한 원전에 대한 미봉책을 시행하다 2호기 노심의 전체 노출과 방사능 대량 유출이라는 끔직한 위기 상황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면 원자력 발전에 전력 수요의 큰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는 재난 상황에서 일본보다 더 체계적인 위기관리 시스템과 인력의 훈련, 관계자의 정직성 등이 갖추어져 있는가?

혹자는 한국의 원전은 이번에 문제가 된 일본의 원전과는 설계가 다른 훨씬 안전성이 높은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 자체가 원인이 아니고 펌프의 전력공급 장치가 고장이 나서 냉각수 공급이 불가능해진 것이 문제였다. 사실 일본과 한국의 원전은 크고 작은 방사능 누출사고에 계속 시달려왔다. 다행히 초기단계에 사고수습이 되었기 때문에 대형사고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대형사고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의 재난을 교훈삼아 이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더 이상의 원전건설을 자제하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와 사회적 습관을 교정하는 노력의 첫 삽을 뜰 때이다. 그리고 기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의 공개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제도도 이제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일본의 원전 전문 과학자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우려들을 일본정부가 미리 경청했다면, 오늘과 같은 핵공포가 일본을 뒤덮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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