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품으로 하늘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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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품으로 하늘을 안았다
  • 김진오
  • 승인 2011.03.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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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승무원에서 기장까지 15년 만에 이룬 꿈
‘시작해도 될까요’ 묻는 후배에 항상 “Good Luck!”

   
▲ 이스타항공 윤희준 기장.
지난달 28일 이스타항공 윤희준 부기장(38)이 국토해양부 항공자격과 기장자격 심사를 통과해 국내 몇 안되는 여성기장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3500여 항공기 조종사 중에 단 5명 뿐인 여성 기장. 더욱이 윤 기장은 공학도에서 객실승무원으로, 그리고 조종사 까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여서 화제를 낳고 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 낸 그녀를 제주발 비행기를 몰고 도착한 청주공항에서 만나 도전과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공학도…승무원…조종사 특이한 이력

“기장입니다. 청주공항을 이륙한 이 비행기는 지금 4500m 상공을 시속 650㎞ 속도로 제주를 향해 날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의례히 듣는 기장의 안내 멘트다. 남성 목소리 일색이지만 이제 운 좋은 승객이라면 부드러운 윤희준 기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를 압도할 것 같은 힘이 묻어있는 중저음이다. 가냘프리만큼 여성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부기장 경력 10년, 5000시간 무사고 비행의 경륜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오른쪽 조종석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데에 10년이 걸렸습니다. 불과 1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자리고 10년이나 옆 좌석에 않아 있었지만 기장이 된 뒤 첫 비행이 왜 그리 긴장되던지 무척 떨렸습니다.”
조종사 복장 안의 넥타이가 그에게 무척 잘 어울린다. 10년 동안이나 매고 다녔으니 몸에 익숙해지기도 했겠지만 그 보다 항상 새로운 것에 망설이지 않은 도전정신이 그를 당당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연히 항공사와 인연을 맺었고 과감한 선택으로 조종사가 됐다.
충남대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했지만 영어를 좋아했고 그래서 외국항공사 취업설명회에 참석한 계기로 입사 시험을 치르게 됐다.
1996년 홍콩의 캐세이퍼시픽항공 객실승무원으로 비행기를 타게 된 그는 동료들의 권유로 조종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는 여성 조종사가 드물지만 캐세이퍼시픽만 하더라도 50여명이나 됐습니다. 그 때부터 조종사에 대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게 됐죠.”
대담함과 정확한 판단력, 거기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까지 갖춘 그녀의 가능성을 동료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망설임 없는 도전의 결실

조종사에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은 그는 승무원 생활 4년 만에 사표를 내고 2000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양성프로그램에 합격했다. 곧바로 미국 비행학교로 보내져 본격적인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대학 전공에 제한 없고 신체 건강한 젊은이라면 누구나 도전이 가능하지만 신체검사만 4번을 받을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시력이 가장 중요한데 라식이나 라색수술 경력이 있어도 탈락하죠.”
1년여 미국 비행학교 교육은 말 그대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비행과 계기지식, 영어 등 지상교육 과정을 통과해야만 실제 비행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매달 시험이 치러지는데 불합격은 곧 낙오를 의미했다.

“비행학교를 마쳤다고 조종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국내로 돌아와 다시 1년 동안 부기장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단계를 거듭할 때 마다 다뤄야 하는 비행기가 커지고 공부해야 하는 엔진과 시스템도 복잡해졌다. 그렇게 2년 동안 수많은 과정과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조종석 옆자리에 앉는 부기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을 과감히 던지고 부기장이 됐을 때도 천하를 안은 것 같았다.

수많은 계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쩔쩔매던 초짜 부기장이 어느덧 10년 경력의 베테랑이 될 즈음 이번에는 조종석 왼쪽 자리에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조종사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 기장과 부기장은 확연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내에 비행중 사고는 물론 작은 문제라도 발생했다면 기장교육 입과 대상에 오를 수 없습니다. 교육 과정도 비행학교 못지 않게 철저하죠. 대상자 전원을 교육해 조종사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정해진 기준을 따라오지 못하면 예외없이 탈락시키는 시스템 때문에 한눈을 팔 겨를이 없습니다.”

남성전유물이 아닌 조종사

항공사와 인연을 맺은지 15년, 조종사의 꿈을 품은지 10년 만에 공학도 윤희준은 스튜어디스에서 부기장으로, 이제 당당한 여성 기장의 꿈을 이뤘다.

특이한 이력 탓일까. 그를 멘토로 여기는 후배 승무원들이 무척 늘었다. 이제라도 조종사에 도전해도 좋겠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럴때 마다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당장 시작하세요.

“조종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비행 패턴을 이해하고 있는 승무원들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20대 젊은 후배들은 더욱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라고 자신있게 조언합니다.”
그는 승무원이 되면서, 조종사에 도전하면서 하늘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하늘을 난다는 것, 하늘을 걸어본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행복한 일입니다. 대개 항공기 조종사는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항공사에 입사해 비행학교에 보내지거나 대학교를 마치고 조종사 자격을 취득해 항공사에 들어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누구나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아직은 300시간 국내선 비행을 채워야 하는 새내기 윤희준 기장이지만 이제 곧 세계를 날며 수많은 하늘을 경험할 대표 여성 조종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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