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급공사 계약에 없는 임의공사로 낭패
상태바
관급공사 계약에 없는 임의공사로 낭패
  • 윤상훈 기자
  • 승인 2011.03.30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리 무상 시공이어도 사고 책임은 시공사 몫”

지자체 요구에 따라 무상으로 도로 시설물을 설치해주었다가 제3자에 교통사고를 유발했다면 누구 책임일까?

차선 도색과 안전시설물 설치 업체 A사는 지난 2004년 38번 국도 제천시 송학면 구간에 대한 가드레일 설치 공사를 수주했다. 총 1900만 원 규모의 이 공사를 수주한 A사는 시공 과정에서 발주처인 제천시로부터 입석리 도로에 과속방지턱을 무상으로 설치해 달라는 황당한 요청을 받았다. 관급 공사에 의존해야 하는 업종 특성 상 시와의 각별한 관계 유지가 절실한 A사로서는 시의 요청을 못 들은 척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과속방지턱을 전문 시공업체에 의뢰했다.

▲ 제천의 한 차선도색 및 안전시설물 시공업체가 시의 이른바 ‘서비스’ 시공 요청에 따라 계약에 없는 과속방지턱을 무상 시공했으나, 이후 교통사고 구상권 소송에 휘말려 패소했다.
A사 대표 B씨는 “차선 도색이나 가드레일 설치 같은 도로교통 안전시설은 거의 100% 제천시나 충북도 등 공공기관이 수요자여서 자치단체와의 관계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당시 제천시 담당자가 과속방지턱을 이른바 ‘서비스’ 항목으로 시공해 줄 것을 워낙 완강히 요구했고, 당사는 시공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약 60만 원의 사비를 들여 공사를 전문 업체에 위탁 발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사후 그날저녁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가 과속방지턱을 서행하지 않고 과속으로 넘어 버스 승객 등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원인은 A사의 위탁을 받은 전문 시공업체가 과속방지턱임을 알리는 노란색 선을 도색하지 않은 상태에서 별도의 위험 표지물까지 설치하지 않은 채 차량통행을 방치했던 데 있었다.

이후 법원은 과속방지턱을 알리는 도색이나 별도의 안전시설을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A사에 손해배상 총금액의 40%에 해당하는 4970만 원을 사고 피해자 측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20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공사를 수주한 A사로서는 과속방지턱 무상 시공비 60만 원에 교통사고 보상금 4970만 원 등 손해만 5000만 원을 보고 만 것이다. B씨는 시 공무원의 부당한 요구에 선의로 대응한 결과가 이 같은 불의의 사태를 낳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고작 몇백만 원 남기자고 가드레일 공사를 수주한 대가가 되레 5000만 원의 손해배상과 교통사고 유발자라는 오명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처럼 엄청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에도 시는 나중에 과속방지턱 철거까지 명령해 다시 40여만 원의 자비를 들여 시설을 뜯어내기까지 했다.”

관급 공사를 하다 보면 공무원들이 끼워 넣기 식으로 별건의 ‘서비스 공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B씨는 “이 경우 당장에는 공무원과 관계 악화 같은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절대 호락호락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며 동종 업계에 주의를 당부했다.

시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어 자비를 들여 시공해준 교통안전 시설물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위로의 말은커녕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담당 부서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B씨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또한 이 사건은 아무리 좋은 뜻에서 기증한 시설물일지라도 교통이나 안전과 관련한 것이라면 만일에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책임 관계를 문서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상기케 하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