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변화 위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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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변화 위한 단상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4.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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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하 충북도의회 전문위원

변화란 사전적 의미로 ‘정책, 제도 등 무형적인 것을 포함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형상, 성질 등 특성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는 반드시 긍정적 의미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행복해 질 수도, 반대로 불행해 질 수도 있다.
필자는 행복한 변화를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몇 가지 생각을 짚어보고자 한다.

송나라 주돈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궁극자(혹은 어떤 원인)의 움직임(動)을 양(陽)이라 하고 이 양동(陽動)이 극(極)에 이르면 음(陰)이라 이르는 고요한(靜) 상태가 되고, 고용한 상태가 극(極)에 이르면 다시 양동(陽動)으로 변한다’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표현으로 인간사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 표현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정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풀어 설명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라는 옛말에서도 우리는 변화의 필연을 엿볼 수 있다. 즉, 변화는 만물의 이치이자 현실적 요구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짚어 볼 것은 ‘변화의 주체가 누구인가?’ 란 물음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능동적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운명을 주체로 돌리는 수동적 변화이다. 물론 현재의 과학과 논리로 풀어내기 어려운 초자연적 영역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능과 정해진 법칙에 따르는 동, 식물을 포함한 일반 자연물(自然物)과는 다르게 사람은 자유의지 혹은 자기결정권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존재이다. 즉, ‘사람’에게 다소 한계가 있음은 인정하더라도 변화의 주체로서 자격을 갖춘 존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서양속담에서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 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지막으로는 변화의 주체인 사람이 ‘어떤 비전(Vision)을 지향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사회‘라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역동적으로 매진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 기득권층이 행복한 사회’라는 잘못된 비전을 지향하고 있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변화가 도래할 것이다. 과거 봉건주의 사회는 소수 기득권층의 행복을 위해 다수 국민들의 희생이 용인되었다. 비록 정치제도는 바뀌었지만,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재벌, 정치권 일부 등 소수 기득권층의 행복을 위해 다수 국민들의 노동이 희생되는 모양새는 외피만 바뀌었을 뿐 여전한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변화의 주체로서 자기자신을 자각하고, 우리사회의 비전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꿈꾸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비전을 이루기 위한 변화에 어떻게, 얼마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를 수시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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