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랜드마크
상태바
청주의 랜드마크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4.21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한때는 청주를 상징할만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라지만 천년은 커녕 백년의 스토리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

가로수길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러브호텔과 도심 곳곳을 밝히는 네온사인이 퇴폐향락의 도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초고층 빌딩들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청주의 멋이 점차 사려져 가고 있다. 큰 길 작은 길 할 것 없이 넘쳐나는 불법주정차와 쓰레기는 청풍명월의 이미지를 무법천지의 도시로 만들고 무심천이나 우암산 같은 산림과 하천 역시 여느 지역과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청주는 아름다운 도시, 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도시가 아니라 무미건조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회색도시 그 자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 같은 불명예와 오명(汚名)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낼 수 있는 대안으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래 랜드마크(landmark)란 여행자가 여러 곳을 다니다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표시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로 치면 경계표 정도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나라나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 또는 조형물을 일컫고 있다.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동경의 동경타워나 모리타워,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러시아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처럼 우리 기업이 외국에 건설한 랜드마크도 있다. 여행객들은 방문지의 문화적 속살을 엿보기 위해 뒷골목이나 재래시장, 그리고 랜드마크로 알려진 곳을 필수 방문지로 꼽고 있다. 물론 랜드마크 때문에 도시 전체가 활력을 되찾고 문화도시, 문화복지로 성공하는 사례도 많다.

청주시가 지금 랜드마크 논쟁에 불을 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에 공감을 하면서 어떤 콘텐츠로 랜드마크화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위기다. 이쯤에서 필자는 랜드마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접근을 제안하고 싶다. 특정 조형물을 설치하는 형식을 탈피해 도시 전체가 랜드마크로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와 일본 가나자와가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밴쿠버는 특별한 상징조형물이 없다. 그 대신 쓰레기 없고 불법 주정차가 없으며 정신 사납게 하는 흉물스런 광고물이 없다. 도시 전체가 숲과 호수와 바다로 둘러쌓여 있어 아름다움 그 자체다. 게다가 서양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친절함이 돋보이니 도시와 문명과 사람의 조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알려진 일본 가나자와는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현대화 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발 닿는 곳마다 일본 특유의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성곽과 사원, 잘 가꾸어진 정원, 곳곳에 숨어있는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 오래된 여관과 맛있는 음식과 다채로운 공예품, 그리고 이것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화공간 등 그 무엇도 부족함이 없다. 랜드마크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는 도시가 아니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속살을 훔쳐보는 설렘으로 나그네의 시심을 울리는 도시인 것이다.

청주도 그러해야 한다. 속도의 시대에 행여 뒤질세라 쾌속 질주하는 도시를 만들면 안된다. 랜드마크를 만들려 하지 말고 도시 전체에 청주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치단체에서 주도하려 하지 말고 시민사회가 참여해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말발 센 사람에게만 귀를 기울인다. 이제부터라도 새롭고 참신한 역량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다. 작은 목소리, 작은 공동체, 작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작은 사람들이 대접받고 행복한 도시면 더욱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