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가 발목 잡고 정당은 덜미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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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가 발목 잡고 정당은 덜미 잡고
  • 김진오
  • 승인 2011.04.2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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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심야교습제한조례 넉 달째 낮잠
야간자율학습 점검한다니 강력 반발
당은 "내년 양대 선거 있는데" 제지

제9대 충청북도의회는 의원 정족수 35명 중 32명이 초선의원들로 채워진 채 지난해 7월 출범했다.

10개월간의 활동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지난 의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교육위원회가 폐지되고 교육청과 도의회가 직접적인 관계가 되면서 민감한 현안들이 의회 내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학원교습시간 단축과 야간자율학습 점검단 구성이다. 일단 의회가 사회 현안 문제들을 공론화 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난 8대 의회에서는 주민제안으로 추진되던 대학 학자금 이자 지원조례가 차일피일 미뤄지다 제정되지 못했다. 반면 9대 의회에서는 학원 심야교습 제한 조례나 야간자율학습 점검단 구성 등에 의회가 먼저 나서고 있다. 과거 같으면 기대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의회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제9대 도의회가 대거 진보적 초선의원들로 채워지며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관련 업계와 수구세력과 잇따라 갈등을 빚고 있다.
학원심야교습제한조례 4개월 낮잠

하지만 이같은 도의회의 행보는 관련 업계와 수구세력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먼저 밤 11시(유·초·중학생)나 자정(고교생)까지 가능했던 학원교습 시간을 오후 10시로 일괄 단축한다는 내용의 학원 심야교습 제한 조례안이 상정되자 학원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야간자율학습 점검단 구성에는 교육계가 발끈하고 있다. 도의회는 지난 21일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거나 해당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서 야간자율학습에 대한 실태조사와 점검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빠르면 이달 중 도내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표본을 뽑아 실태조사 및 점검을 벌인다는 것.
특히 도의회는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추진하는 가칭 ‘학생 학습 자율 선택권 조례’ 제정 여부를 판단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교육계는 예상대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2일 최미애 도의회 교육위워장의 야간자율학습 점검단 구성 발언이 나오자 도내 인문계 고교 교장 50여 명이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단 대응 움직임을 보였다. 학부모대표연합회 등 교육단체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등 반발수위를 높이고 있다.

관심은 도의회가 관련 업계와 수구세력의 거센 반발을 이겨낼 수 있을지 여부다.
야간자율학습 점검단 구성을 결정, 강행의지를 분명히 하고는 있지만 학원심야교습제한 조례는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학원심야교습제한 조례는 지난 1월 19일 도의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지만 4개월째 본회의에 상정 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낮잠을 자고 있다.
도의회는 학원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본회의에 상정하기 전에 학원·학부모단체·교원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공청회를 갖고 학원심야교습에 관한 찬반의견을 들어본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겁없는 초선, 높은 보수의 벽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초선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제9대 도의회와 가장 보수의 벽이 두꺼운 교육계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시민운동 진영의 대표인물인 최미애·이광희 의원이 교육위원회에 배정됐고 위원장 자리를 두고 대다수 교육계 출신의 교육의원들과 출발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야간자율학습 점검단 구성 이전에도 민주노동당 가입 교사들의 징계, 청주 샛별초등학교 인조잔디 설치 논란 등 민감한 사안을 두고 잇따라 갈등을 빚었다.

특히 야간자율학습 점검단에 대해 교육계는 학교장 자율권을 넘어 교권 침해로 까지 받아들이며 반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충북교총과 교장단협의회는 조만간 만나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우에 따라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도의회는 교육계가 달라진 의회와의 관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광희 의원은 “도교육청 교육위원회가 폐지되고 도의회 교육의원을 따로 선출하면서 도교육청은 집행부의 한 축으로 도의회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된 것이다. 때문에 야간자율학습과 같은 교육현안을 의회가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를 자율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한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는 도의회가 수십년 동안 굳어진 수구의 벽에 부딪혀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진보적 인사들이 대거 진출한 도의회와 수구 보수 세력의 시각차가 예상보다 크다. 야간자율학습만 하더라도 교육계는 학생을 교육의 수혜자로 보는 보수적인 시각과 교육 주체의 한 축으로 의견과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과점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구 관리나 잘 하면 될 것을’
튀는 지방의원 달갑지 않은 공천권 가진 정당

지방의원들이 집행부 감시와 견제라는 임무에 소홀했다는 게 지금까지 의회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다. 의원의 전문성과 자질이 곧 잘 도마 위에 오르는 것도 이같은 평가와 무관치 않다.

여기에는 기초의회에까지 파고든 정당정치가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방의원의 공천권은 소속 정당, 구체적으로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행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크고 작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지방의원들이 튀는 행보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 적당히 집행부와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구 관리 잘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몇몇 지방의원들은 소속 정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들로부터 자제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고 있다.

한 지방의원은 “공식적인 요청은 아니지만 간혹 지나치게 몰고 가지 말라거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얘기는 듣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초의회까지 정당정치 시스템이 적용되다 보니 의정활동에 정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가 생긴다. 의원들의 자질문제 만큼이나 지방의회에 정당정치의 부작용도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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