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예술을 주도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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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예술을 주도하는 시대
  • 충청리뷰
  • 승인 2004.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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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 호 (신미술관 학예사)

우리는 신문이나 TV같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영상미술’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최근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등의 흥행성공으로 영상산업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고 본다. 컴퓨터 게임도 그렇다. 컴퓨터 앞에서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하다 사망했다는 소식과 계속되는 전자 게임으로 인해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인다는 소식 등 영상산업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영상기술의 발달로 우리 생활이 영상이미지에 거의 점령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에서도 사진, 비디오, 컴퓨터 등 영상매체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대거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예술가까지도 ‘영상’타령을 하고 있으니 체질적으로 기술문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현상들에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본래 아트 ‘Art’는 기술이라는 의미를 지닌 어휘로서 물건을 제작하는 기술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Art’가 오늘날과 같은 미적인 기술(Fine Art)을 의미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이다. 인류 문명의 변혁을 가져온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실을 반영하고 시대성을 생명으로 하는 미술에서 그 의미가 부각되는 것은 당연하고, ‘기술’과 ‘미술’의 관계는 예전부터 있어왔기에 영상시대에 영상미술이 뜨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20세기 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기술에 대한 현대미술의 반응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미래주의(Futurism)와 바우하우스 운동(Bauhus)과 같은 긍정적인 태도와 다다이즘(Dadaism)과 초현실주의(Surrealism) 같은 부정적인 태도로 나뉘어 나타난다. 전자가 기계화가 표상하는 현대 환경의 역동성을 미술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면, 후자는 기계의 부조리와 과학기술의 발전논리 속에 갇힌 현대인의 위기를 표현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 상품의 생산이 수요를 넘어서는 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테크놀로지에 내재한 합리주의 정신과 그 기능성이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이 우세하면서 기계를 조형요소로 수용하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같은 본격적인 영상미술이 시작된다.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을 전제로 한다. 텔레비전은 대중매체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클 뿐만 아니라 즉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광범위한 충격을 주는 시청각매체로서 짧은 기간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함께 개척된 인쇄매체 시대를 영상매체 시대로 바꿔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사회학자 맥루한(Mac Luhan)은 모든 매체가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고 본다.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전자회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감각기관의 확장으로서 모든 매체는 그 메시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말하자면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것이다.
21세기 현재 전자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과 확장은 한층 더 영상문화의 폭발을 가져왔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들어온 우리는 하루라도 이미지를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디지털 영상 이미지는 회화의 시대, 사진의 시대, 텔레비전의 시대, 즉 아날로그 시대의 이미지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단순히 보여지기 위해 저기에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보게 만들기 위해 가공, 복제, 모조된 이미지들이다. 당연히 21세기 디지털 문화에서는 회화나 사진이 지녔던 특징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한 디지털영상미술로 대체될 것이다.
이제 ‘예술가는 기술자’인, ‘기술’이 예술을 주도하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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