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옛길과 새 도로명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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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옛길과 새 도로명 주소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6.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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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청주대 건축학과 교수

7월부터 새 주소, 새 도로명이 시행에 들어갔다. 도로명 주소가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표지판을 따라 이곳저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에 동서로와 남북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나, 골목길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복잡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예전부터 내려온 지명 주소와 도로명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 지명에 담긴 지역의 풍속과 문화의 향기가 함께 사라질까 염려스럽다.

길은 지역의 역사와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 공간구조의 한 요소다. 역사도시 청주 역시 옛길은 도시공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다. 당산에서 우암산, 상당산성으로 이어지는 지형지세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무심천에 맞춰 만들어진 남북방향의 기다란 격자형 길이 도시의 경관 축을 이루고 있다. 주택지 안에는 예전의 물길과 바람 길에 의해 만들어진 골목길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옛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다양한 행위와 놀이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생활의 편의성과 경제적 이유로 바둑판 모양의 도로망이 도입되면서,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나뭇가지 모양의 안길과 샛길이 사라지거나, 잘려 나갔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대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한다는 이유로, 폭원 6m의 소방도로로 대체되었다. 예전의 기억을 연상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진 것이다.

옛길은 정서를 순화시키는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햇빛이 드는 주택의 마당과 음영이 있는 좁은 골목길의 온도차에 의해, 길에서 마당으로 바람이 생겨난다. 옛길에 의해서 바람에 의한 자연 환기나 여름철의 서늘함이 조절되는 것이다. 옛길은 일조를 조절하고 바람을 일으켜 도시의 냄새까지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들어 다분히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추구에서 벗어나, 우리의 오랜 삶을 지배하고 간직해 온 환경을 소중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이는 문화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지금까지 지탱해준 도시 공간구조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녹색, 친환경 조성의 해법이 여기에 있다.

청주 원도심에는 31개의 남북로, 21개의 동서로, 42여 개의 골목길이 있다. 남북로에는 가장 기다란 연장 3km에 이르는 성안길-중앙로, 상당로, 대성로가 원도심의 중심부를 가르고 있으며, 연장 2km에 이르는 중앙공원길-삼충로, 남주로-교서길, 그리고 연장 1km 내외의 철당간길과 수동성당길, 북문로 2가의 장안로와 정원로 등이 있다.

다른 역사도시와는 달리 비교적 정연한 남북방향의 일정한 도로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청주읍성 설축 당시 남북문을 잇는 성안길을 근간으로 도시의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동서로는 사직로, 방아다리길, 흥덕로로 대표되는데, 이들은 모두 새롭게 조성된 대로들이다. 옛길로는 구 모충교와 이어지는 가구점길, 그리고 은행나무길이 있고, 읍성 내에는 동헌이 위치한 청원군청 앞 율곡로, 서문으로 이어지는 서문시장 서로가 있다.

청주읍성이 파훼되면서 서문대교에서 도청 뒤를 지나 청주향교로 이어지는 기다란 서문로-향기로가 개설되었고, 중앙공원 앞 남사로는 명암로와 당고갯길로 이어진다.

또한 도심 안쪽, 읍성 남문 밖으로 많은 골목길이 갈래져 있다. 행복길, 바른맘길, 국화길, 세간로, 보람길, 서원로가 그것이다. 이들 골목길 이외에 사이사이에 난 샛길을 이으면 커다란 타원형 모양의 그야 말로 환상적인 가로망이 나타난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청주 남문 밖의 커다란 특징이며, 동시에 소중한 공간 문화유산인 것이다. 도심의 커뮤니티는 매우 사소한 바로 이런 곳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정구역중 가장 작은 단위인 통, 반이 길을 중심으로 서로 나뉘어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길을 중심으로 마을 단위(町)가 이루어져 있다. 길을 중심으로 청소, 방범 등 이웃 간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새주소 시행이 과거 왜식 동명을 우리 고유의 동명으로 개칭한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면, 이와 함께 미래 우리 동네의 커뮤니티를 창출하도록 하는 단위 행정구역의 변경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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