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합선 주택화재 배상 길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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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합선 주택화재 배상 길 열리나
  • 경철수 기자
  • 승인 2011.08.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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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관리소홀' 한전책임 묻는 원고측 손 들어줘
한전 충북본부 "입증책임 묻지 않았다" 즉각 항소

▲ 지난해 4월 농업용 전기 인입선에서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불이나 주택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청원군 남일면 송암리 남모씨(33)가 화재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력 충북본부(이하 한전충북본부)의 관리소홀로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주택화재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에게 법원이 손을 들어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본보 636호 17면 보도>

청주지법 1심 재판부는 지난 6월10일 한전 충북본부를 상대로 주택전소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청원군 남일면 남모(56)·이모(46)씨에게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하고 노후주택에 대한 감가상각을 고려해 한전은 각각 1억7000만원과 1억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전 충북본부는 "원고측의 입증책임 없이 한전측에 일방적인 과실을 인정한 부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다. 하지만 한전의 관리 소홀을 이유로 배상판결을 내린 첫 사례로 항소심 재판부마저 원고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 유사한 피해자들의 보상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4월8일 오전 7시20분께 청원군 남일면에 사는 남모씨(56)와 이모씨(46)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나 소방차 출동 1시간여만인 오전 8시20분께 진화됐다. 이날 화재로 남씨와 이씨의 주택이 전소되고 남씨의 축사에 있던 암소가 불에 타 죽는가 하면 고추 건조실 등이 불에 타 소방서 추산 6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화마로 기획전과 논문까지 연기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은 남씨 가족은 당시 마을회관을 빌려 생활하다 현재 임시거처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 남서울대 유리조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밟던 남씨의 아들(33)은 기획전과 논문까지 연기하기도 했었다.

남 씨는 지난 2008년 10월 서울 서초동 갤러리K에서 데뷔전을 했던 작품 30여점과 지난해 8월 청주 한국공예관 기획 초대전에 출품했던 작품까지 모두 50여점을 화재로 잃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또 대전동물원에 납품하기로 했던 500만원 상당의 유리 액세서리까지 화마로 잃어 적잖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농가주택을 구입해 7500만원이란 적지 않은 리모델링 비용을 들여 살던 이 씨도 당시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 당시 원목으로 리모델링한 농가주택이 전소되면서 살림 집기류가 모두 갖춰진 아파트 사글세를 얻어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다. 이 씨도 뒤늦게 적십자사 구호품이 담긴 쌀과 트레이닝복을 수령해 생활하기도 했다. 이처럼 딱한 사정의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6월초쯤이다.
 
법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인정해 한전 충북본부의 과실을 80∼90%, 원고들의 과오를 10∼20%로 인정하고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당시 국과수의 감정결과는 화재 가옥의 서쪽에 위치한 농업용 전기 전신주로부터 남씨의 집(고추건조실)까지 연결된 농업용 전기 인입선에서 단락흔이 발견되면서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재일 가능성을 추정했다. 

한전 책임 최대 90%까지 물어
이는 목격자들의 말과도 상당부분 일치했었다. 남씨 가족은 화재 당일 오전 6시께 축사(소)에 사료를 주고 농사일을 준비한 뒤 아침식사를 하려다 오전 7시께 사촌형 남모씨(57)가 불이 났다는 소리에 진화를 하려다 귀에 약간의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당시 남씨는 자신의 집 담과 2m 안팎 간격으로 있는 또 다른 피해자 이씨의 조립식 지붕 아래에서 불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한전 충북본부는 당시 '전기합선으로 인한 배상 전례가 없다'며 소송에 자신감을 내 비치기도 했었다. 한전 충북본부 관계자는 "20년 이상 근무했지만 늘어진 인입선의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이 같은 보상 판례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은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화재에 대해 한전의 책임을 최대 90%까지 묻는 1심 판결을 내렸다.

또 늘어진 전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지속적으로 안전조치를 하도록 한전에 알리지 않은 원고측에도 10∼20%의 책임을 물었다. 원고 남 씨는 "국가기관과의 싸움에 대해 우려를 많이 했는데 합리적인 판결을 내려준 1심 재판부에 감사할 뿐이다"며 "판례가 없다며 결과물을 제출하지 않은 한전측의 태도를 볼 때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정확한 피해액 산정을 위해 사설 감정까지 의뢰했다. 끝까지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전 충북본부 관계자는 "재판부가 국과수 조사결과의 공신력을 인정해 당사 측에 80%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1심에서 패소했지만 곧바로 이의를 제기해 항소심이 진행중이다"며 "원고(이 씨)측도 화재원인 부분의 과실 20%를 인정하지 못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소송 진행중이라 구체적인 답변을 하기 어려우나 화재 원인에 대해 원고측의 입증책임 없이 한전측에 일방적인 과실을 인정한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전, 전기합선 추정 주택화재 잇단 송사
상가화재 피해 양모씨도 한전상대 손배소 제기

이번 소송의 결과에 따라 한전은 잇단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기도 안양에 사는 양모씨(40)도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중에 있다. 25년 된 가건물에서 가게를 운영해 오던 양 씨는 지난  2월 26일 새벽 4시께 인입배선에서 전기합선으로 추정(국과수 감정결과)되는 불이나 자신의 가게는 물론 인근 상가 3채가 불에 전소되는 피해로 수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인근 상가 주인들로부터 피소되기도 한 양씨는 "누전 차단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국과수 감정결과 인입 배선의 전기합선을 추정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한전에 관리소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양 씨는 "지난 98년 원고패소 이후 전기합선으로 인한 배상판결이 없다"며 "소송 진행중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다 보니 소취하 사건만 많은 듯하다. 이번 사례를 통해 배상의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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