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 삶의 지혜로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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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삶의 지혜로 꽃피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9.2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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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우리 선조들은 자연 속에서 생활의 지혜를 찾고 예술과 호흡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과 철학과 미학, 그리고 지적 자양분을 얻고자 했다.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으며, 그래서 더욱 빛나는 역사와 문화의 물결을 만들었던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린 선조들의 지혜야말로 우리가 본받고 실천해야 할 문화유산이자 공예라는 생각에 절로 숙연해진다.

초가집의 면면을 살펴보면 건강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재료만을 엄선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벽과 바닥, 천창의 마감재로 황토흙을 사용했는데 습도조절과 항균효과는 물론이고 온도조절과 냄새제거에도 효능이 뛰어나며 신진대사 촉진과 신경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현대식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아파트 증후군과 아토피 등을 치료하는 비밀의 열쇠 역시 황토흙에 있다는 것이다.

한옥집이든 초가집이든 가정마다 장독대가 있었는데 옹기는 흙·물·불·바람의 자연이 빚어내 최고의 과학이다. 간장이나 된장을 발효할 때 사용하고 수많은 음식을 부패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때 사용했다. 한국의 음식은 염분과 첨가물이 많아 금속으로 만든 그릇은 부식될 우려가 있는데 자연에서 태어난 옹기는 보관성이 뛰어나고 각종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마력까지 지녔다.

가마 안에서 1200도로 구울 때 표면에 생기는 미세한 숨구멍이 생기는데 이 숨구멍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습도를 조절하고 날숨과 들숨이 반복되며 이를 통해 보온효과를 주고 발효와 정화의 효과를 준다.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한지가 세계 최고의 종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섬유질이 질기기로 소문난 한국의 닥나무 껍질을 삶은 뒤 풀을 섞어 발로 떠내는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책을 만들고 문풍지로도 사용했으며 한 올 한 올 꼬아 신발을 만들거나 자투리는 겹겹이 발라 물건 담는 상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선조들은 500년 가는 비단보다 더 질기고 오래가기에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연염색을 즐겨 사용한 우리 선조들은 생활의 달인이었다. 지천에 널려있는 풀과 꽃과 열매를 이용해 수많은 색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들은 모두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항균작용, 혈액순환, 피부병 등의 각종 질병 예방효과까지 갖추었다. 소나무 껍질에서 붉을 색을, 울금뿌리에서 연노란색을, 치자나무에서 노란색을, 밤이나 수수에서는 갈색을 만들었으며 홍화나 오미자, 쪽풀 등 자연 속에서 수많은 색을 뽑아내 삶의 공간을 아름답게 연출했다.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이 7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았던 것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천연 도료인 옻칠을 했기 때문이다. 옻칠을 하면 표면에 견고하고 단단한 막이 형성돼 방수효과와 뛰어난 보관성 및 내구성을 자랑하게 되며 벌레의 침입도 막는다. 여기에 자개를 입히면 눈이 부시게 황홀한 장신구나 가구가 되는데 우리의 것이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어디 이뿐인가. 곡식알을 제거하고 남은 볏짚이나 칡의 뿌리, 그리고 날짐승과 들짐승의 털을 이용해 붓을 만드는 재능도 뛰어나며 오동나무·밤나무·소나무·대추나무·향나무 등을 이용해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 수많은 악기를 만들고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우리의 공예는 본래 이러한 법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진화해 가는 힘, 수행을 하듯 갊아 온 삶의 아름다움, 느린 걸음이기에 건질 수 있었던 심오한 지혜, 품을수록 깊이 있고 만질수록 윤기가 나며 묵을수록 자연의 향기로움에 취하는 매력….

2011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이러한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옻칠명장 김성호, 궁시장 양태현, 한지장 안치용, 배첩장 홍종진, 낙화장 김영조, 악기장 조준석, 필장 유필무, 삼베장 최문자, 옹기장 박재완 등 전통 장인들이 펼치는 기예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올 가을 삶이 고단하고 눅눅하며, 막막하고 비루한 사람들은 찬연히 빛나는 장인들의 군무의 세계에 빠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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