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실로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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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실로 멀기만 하다
  • 충청리뷰
  • 승인 200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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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자치행정부장

대통령탄핵소추안 국회통과가 있던 지난 12일 마침 폭설피해 복구현장에 취재하러 가던 기자는 충북도경찰청 옥상에서 ‘탄핵무효’를 외치는 한 시민을 보았다. 신나를 몸에 뿌리고 금방이라도 불을 뿜으며 뛰어내릴 것 같은 그를 공무원과 지나가는 시민들은 위태롭게 쳐다보았다. 119도 달려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뛰어내리지 않고 ‘걸어서’ 내려왔다. 직장인이며,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그는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할 각오를 했던 것이다.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청주시내 철당간 광장에는 이 날부터 수천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여든다. 손에 촛불을 들고. 촛불시위는 월드컵 이후 우리 국민들 사이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듯하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문화행사다” “아니다” 설전을 벌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합법 행사냐, 아니냐가 아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생업을 집어치우고, 퇴근후 알콩달콩한 가족들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그 귀한 저녁시간에 오겠는가. 아이의 손목을 잡은 젊은 엄마와 결혼기념일을 맞은 부부는 ‘노사모’회원 아니다. ‘노사모’가 아님에도 이들은 철당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누가 과연 이들을 이 곳으로 오도록 했을까.

안 그래도 우리는 탄핵 통과 후 집단무기력증에 빠졌다. 연일 친노(親盧) 반노(反盧) 구도로 갈라진 사회분열을 걱정하는 소리가 언론에 집중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분열을 부추기는 것도 정치권이다. 국민들은 친노냐 반노냐를 따지기 이전에 엄청난 허탈감에 젖어 있다.폭설피해를 당하고도 규정상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한 축산업자는 “정부에 우리 이야기를 한들 들어주겠는가. 정치인들이 언제 국민을 생각하고 행동했나. 아마 폭설 피해자들의 얘기는 벌써 뒷전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정치가 잘돼야 경제도 살아날텐데 앞으로 큰 일이다”고 하소연했다.

청주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차라리 식당 문을 닫고 싶다. 근근히 하루에 10명도 안되는 손님에게 음식을 팔았는데 이제 그 것마저 안된다.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 통과 이후 더 소비를 줄여 우리같은 사람들은 죽고만 싶다”며 억울하게 탄핵 ‘유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누가 이들의 희망을 뺏어 갔을까. 국민들은 의회 쿠데타를 주도한 16대 국회의원들에게 희망을 뺏어가도 좋다는 자격을 부여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직도 모든 것을 정치가 좌지우지하는 후진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선택할 길은 ‘이민’ 밖에 없다는 극단론자의 이야기에 귀가 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탄핵반대’를 외치며 울부짖는 반대편에서 ‘왕보수’들이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휘날리는 장면을 보는 것은 실로 착잡하다. 아무리 봄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해도 하늘이 사상최고의 폭설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 또한 험난하고 험난하지만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하루 아침에 끌어내리는 것을 볼 줄은 몰랐다. 그러나 따뜻한 봄 햇살을 받고 싶다.

이 우울한 하늘 밑에서 쨍하고 빛나는 태양을 보고 싶다. 집단무기력증에 빠진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도 바로 ‘희망’을 주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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