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장 밖의 일상과 손잡다
상태바
문화, 전시장 밖의 일상과 손잡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10.19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미술품은 미술관에만 있고, 유물은 박물관에만 있을까? 행여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다시 봐야 할 것이다. 되레 그림 없는 미술관이 있고, 유물 없는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우리 시대는 경직되고 고루한 사고를 경계한다. 공연장에서나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던 것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도 펼쳐지고 있으니 통섭과 융합의 시대요, 크로싱(crossing)과 창조경영의 시대라 할 것이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건축가·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 화가·조각가·발명가·건축가·해부학자·식물학자·도시계획가·천문학자·음악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세계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은 특정한 장르에 몰입하지 않고 멀티플레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했다.

이토록 찬연한 가을 날, 사람들은 나긋한 걸음을 좇으며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 한다. 예전 같으면 산이나 들로 소풍가던 발걸음인데 이제는 도시 한복판의 재래시장이나 뒷골목을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고 삶 구석구석에 아티스트의 영감이 넘쳐나며 생태와 문화가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홍제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갈 곳 잃은 피란민들이 천막치고 살았던 몇 안 되는 달동네다. 이곳에 미술가와 대학생 100여명이 담장 곳곳에 그림을 그리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방문객들은 미처 몰랐던 자신의 속마음이 그림으로 말을 건네는 놀라움에 호사를 누린다. 군포시 수리산 자락에 위치한 납덕골 마을은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찬 기운만 감돌았는데 화가들이 둥지를 틀면서 테마벽화가 만들어지고 골목길 투어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문현동 돌산마을 역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2008년 공공디자인 최우수상을 받고 영화 <마더>를 촬영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청주시 수동의 수암골은 몇 해 전부터 지역 작가들이 벽화를 그리면서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등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낮은 담장과 좁은 골목길, 그 속에 그려져 있는 풍경을 찾아 떠나는 깊고 느린 시간여행. 아날로그의 서정이 뚝뚝 떨어질 것 같고 가슴 시리며 아픈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재래시장이 미술관으로 깜짝 변신한 사례도 있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통인시장에 대학생들과 작가 100여명이 가게를 점령했다. 가게 주인과 협업해 사연을 캐고 그에 맞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형 문화마켓을 만들었으니 상인들도, 손님들도 신바람이다.

황학동 중앙시장은 점포 절반 이상이 비어버린 쇠락한 시장이었는데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새로운 창작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청주의 가경시장은 시장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연팀들이 매주 거리공연을 펼치면서 흥과 멋이 있는 공연장, 개성 넘치는 문화의 장터가 되었다.

문화의 숨결은 버려진 공장과 낡은 창고 속으로 바이러스처럼 침투되고 있다. 인천의 아트플랫폼은 1930년대 지은 일본식 건축물에 도예, 회화, 조각 등 작가들이 입주해 있으며 서울의 금천예술공장 역시 옛 공장건물에 미술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65년의 역사를 간직한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국내 최초의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라는데 주목받고 있다. 거칠고 야성적인 콘크리트 건물에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들이 전시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공간으로 손색없다는 여론이다. 더 이상 담배는 생산되지 않지만 문화를 생산하고 문화콘텐츠를 수출하는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이처럼 도시 곳곳이 살아있는 문화곳간이고 예술이 일상으로 다가왔다. 건조하고 눅눅한 삶에 지쳐있다면 가을빛 감도는 아름다운 여행을 하면 어떨까. 뚜벅뚜벅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와 찬연하게 빛나는 문화의 속살을 벗 삼아 불멸의 꽃향기를 만들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