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철회 논란, 되살아나는 친일청산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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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철회 논란, 되살아나는 친일청산 무산
  • 충청리뷰
  • 승인 200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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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정치부장

탄핵철회를 놓고 벌이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공방은 한국정치의 반역사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탄핵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 자체가 놀랍고도 기가막히다. 더 한심한 것은 원희룡 등 한나라당의 개혁을 책임지겠다는 소장파들이 TV에 나와 떠들어 대는 ‘논리’다.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탄핵철회는 아직 국민과 한나라당에게 명분을 주지 못한다느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골빈 소피스트들의 궤변이 그렇다. 야당에 정치적 타협을 요구하는 열린우리당의 싹수도 노랗지만, 눈물을 질질 짜며 2당에 오른 한나라당의 앞날도 암다하다는 생각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국민들이 그렇게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는데도 이미 17대 국회는 잘못된 길에 코를 들이대고 있다.

지금으로선 탄핵에 대한 해법은 단 두가지다. 한나라당 등 탄핵을 주도한 야당이 무조건 철회하든지, 아니면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탄핵 철회는 원천적으로 정치적 협상으로 풀 사안이 아니다. 총선에 눈이 먼 야당의원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마치 컴퓨터 게임하듯 대통령을 유폐시킨 ‘의회쿠데타’를 어떻게 협상과 타협으로 복구한다는 말인가. 분명한 응징만이 해결책이고, 굳이 국민들이 선처하겠다면 야당이 조건없이 석고대죄하고 헌재에 스스로 철회를 요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구걸하듯 한나라당에 철회를 간청하고 있다. 여당의 구걸과 야당의 선처로 대통령직을 다시 찾아 봤자 결국 노대통령은 ‘탄핵됐던 대통령’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탄핵 자체의 정당성이 우리역사에 그대로 각인되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와 목이 터져라 항거한 70%의 국민들이 바라는 건 이게 아니다. 탄핵 자체의 불법과 의정파괴를 응징하겠다는 의지였다. 믿고 싶지 않지만 한나라당의 계략 때문에 대선자금 수사와 바터할 것이라는 소문마저 흉흉하게 나돈다. 만약 한나라당이 끝까지 자진철회를 거부한다면 열린우리당은 당당하게 헌재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헌재에서 ‘탄핵부당’의 판결이 나와야 비로소 의회쿠데타가 역사적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헌재에서 탄핵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뒤의 몫은 어차피 국민 70%가 책임질 문제다. 엎어지고 깨지고 피흘리며 얻어낸 민주주의는 그렇게 쉽게 포기되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다시 수권정당으로서 국민들한테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사실 문제의 탄핵건보다 더 좋은 호재도 없다. 스스로 철회를 요구할 때 국민들은 비로소 과거 부패수구의 화신 한나라당의 변신을 실감할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됐고, 노대통령이 이 결과를 재신임으로 인정했다는 촌스런 발상에서가 아니다. 이미 한나라당은 지난 총선에서 탄핵철회를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다면 왜 회초리 맞는 광고로 유권자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후보들이 공공연하게 ‘과오’를 인정했는가를 묻고 싶다. 이젠 국민들에게 솔직하길 바란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그야말로 충정으로 덜어 준 ‘표’를 가지고 언제까지 정당득표율 운운하며 70%의 국민들을 기만할 참인가.

탄핵에 대한 여야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많은 식자들은 해방후 친일청산의 좌절이 떠올라 섬뜩함마저 느낀다. 이 때 반역사를 단죄하지 못한 업보가 반세기가 넘도록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유린해 왔는데, 탄핵철회 거래로 의회쿠데타 주역들에게 또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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