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없는 방, ‘죽음에 이르는 방’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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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죽음에 이르는 방’의 비밀
  • 김남균 노동전문 기자
  • 승인 2012.07.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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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하이닉스·매그나칩, 백혈병 발병 사례 줄이어
24세 청년, 근무 한 달 만에 피부발진…회사는 부정

지난 6월 하순 기자는 SK하이닉스청주공장 사내하청에 근무하던 한 노동자의 ‘중독성피부발진’ 소식을 접했다. 이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삼성반도체 등 삼성계열에서만 56명의 노동자들이 암, 백혈병 등으로 죽어나갔다. 올해에만 20~30대 초반의 꽃다운 여성노동자 4명이 죽었다.

한쪽에선 ‘직업병’이라고 주장하고, 한쪽에선 업무와 무관한 개인질병으로 취급했다. 산재 인정여부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지금까지 100여 차례의 반도체산업 산재신청과 관련해 일관된 태도를 취해왔다. 오직 ‘산재불승인’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있었다.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故 황유미양과 이숙영양의 유족이 신청한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사건에서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건강권 공론화 할 때 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이하 반올림)은 반도체·전자산업의 각종 암, 백혈병, 뇌종양 등의 질환을 ‘직업병’으로 규정한다. 1966년에 조업을 시작해서 2010년까지 1000여 명의 이황화중독 노동자를 있게 한 원진레이온 사건과 15세의 나이에 학업을 잇고 가정생활에도 도움이 되고자 협성계공에 입사하여 2달 만에 수은중독으로 1988년에 세상을 떠난 문송면군의 사례, 반도체산업의 각종 질환도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반도체산업의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매그나칩에서 근무하던 김진기 씨는 2011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족이 산업재해보상보험승인 신청을 함으로서 우리지역의 반도체 공장도 예외가 아님이 지역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 뒤 김씨 외에도 8명의 발병사례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SK하이닉스 청주공장 내에 있는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던 24세의 청년이 “나는 피해자다”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회사 측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펄쩍 뛰었다. SK하이닉스 김종태 팀장은 ‘요즘 세상에 어떤 젊은 세대가 위험한 곳에서 일을 하겠냐’며 청주공장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기자에게 직접 생산공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직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의미가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SK하이닉스와 매그나칩 반도체가 위치한 청주공장의 산업안정성 및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가 공론화 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직업병으로 인정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어도 발병했었을까’라는 의문이 해소될 때 노동자 안전이 담보되기 때문이다”고 이종란 노무사는 말한다. 이들의 말처럼 SK하이닉스와 매그나칩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질병의 문제도 지역사회에서 공론화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쉬쉬하며 이런 문제를 덮을 순 없다. 논란이 있을 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토론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망자 故 황유미 씨와 ‘반올림’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유미 씨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황유미 씨의 사건을 계기로 2007년 11월 20일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갔다.

한편 대책위는 “황유미 씨의 산재 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IBM 공장, 영국의 내셔널 반도체 공장, 타이완의 RCA 공장 등에서 암으로 죽어간 젊은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대책위는 결국, “백혈병, 림프종 등 혈액암, 뇌종양, 흑색종, 육아종,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등 심각한 질환만이 사회화되는 것을 넘어서, 피부질환과 생리불순, 유산, 근골격계질환, 불임, 탈모 등 그 모든 건강피해들이 집단적인 노동조건과 환경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직업병’이다”라고 규정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병’이 삼성반도체 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반도체산업과 유사한 전자산업에 걸쳐 발생하는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해 ‘반올림’으로 2008년 새로이 태어난다.

삼성 전자계열사만 56명

‘반올림’은 2007년 대책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래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삼성계열사에서 지금까지 총 156건의 사례를 제보 받았으며, 이중에서 56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청정산업’, ‘클린산업’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부를 축적하고, 경제를 지탱해주는 반도체사업 이면에는 “수백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이 사용되며, 제조공정에서 대포적 발암물질인 ‘벤젠’이 자체 생성되고, 전리방사선등이 사용되어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수 있는 ‘유해작업환경’의 종합판이다”라고 반올림 소속 이종란 노무사는 말한다.

‘반올림’은 2012년 들어서 삼성계열사 소속 이은주양이 지난 1월 4일 난소암으로 사망하고, 김도은 양은 3월 3일 유방암으로 사망, 이윤정 양은 5월 7일 뇌종양으로 사망, 윤슬기 양은 6월 2일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하는 등 올해에만 4명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9명 제보 중 5명 사망… SK하이닉스·매그나칩 예외 아니다

‘반올림’은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 제보자 현황 (반올림, 2012년 3월 5일 기준)’이라는 게시물을 ‘반올림’다음커뮤니티(http://cafe.daum.net/samsunglabor)에 게재했다. 이 게시물에는 2011년 5월에 사망한 故 김진기 씨 외 추가 4명의 사망 사례가 적시되어 있다.

그동안 삼성반도체등 삼성계열사에 대한 사례는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반면 SK하이닉스와 매그나칩반도체는 알려진 것이 없어 상대적인 ‘안전지대’로 알려진 상황에서 ‘반올림’의 사례발표는 본격적인 피해사례를 공개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앞으로 이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섣부르게 예상할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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