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최대 적은 정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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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최대 적은 정치 무관심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08.0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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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근 변호사

필자는 전에 속리산 봉곡암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 그 암자에서 여든 가까이 되신 노스님과 단둘이 지냈다. 그 땐 보일러가 없어, 내가 하루 두 차례씩 군불을 땠다. 그렇게 절 살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밥 먹을 때도 책을 봤다. 그처럼 바빴지만 봉곡암 생활은 내게 ‘스스로 그러함(自然)’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방 안에서 한껏 공부를 하고 밖으로 나와 바위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자연의 소리와 냄새들이 나를 스쳐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 있던 억압과 불안이 눈 녹듯 스러지고 안정과 평화가 찾아들었다. 그렇게 난 자연 앞에서 무장 해제되어 자연을 닮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비구니 스님이 왔다. 마음이 설레었다. 그 스님이 밥을 해 주었다. 난 스님의 부탁을 받고 허리에 쑥뜸을 놓아주기도 하고, 너른 바위에 앉아 스님에게서 원각경을 배우기도 했다. 단조롭던 절 생활이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 때문에 내가 절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젊은 스님은 산 아래까지 내려와 나를 배웅했다. 터벅터벅 터미널이 있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떠오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도 그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왜 거기서 박정희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을까? 그가 예비군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가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한 것이 많은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녀는 “지금 민생이 얼마나 중요한데 역사논쟁을 하느냐”고도 했다.

난 여기서 박 후보가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것과 새로운 미래를 추구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다. 올바른 과거 청산 없이는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은 배가 고프니 밥을 먹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희생해야 한다.” “분배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면서 독재를 합리화했다. 일제에 뿌리를 둔 군사문화식 독재는 공공기관, 학교, 기업 등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나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마저 억압당하고, 군사정권의 획일적인 통제에 따라야 했다.

이러한 독재는 가정, 심지어는 개인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양성을 억압하고 획일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익숙한 개인들은 자신의 정서마저도 그렇게 획일적으로 억압했다. 사람에게는 즐거움, 괴로움, 미움, 시기심 등 온갖 마음들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러한 마음들은 그 주인이 살아오면서 맺은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 의지로 다 제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부추기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마음들은 스스로 알아서 정리가 된다. 이것이 마음의 민주화다. 그런데 독재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것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괴로울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괴롭다.

난 속리산 봉곡암 시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면서 오랜 세월 내 안에서 이루어져 온 독재를 무너뜨리고 마음의 민주화를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괴롭혔던 내 안의 독재가 박정희의 독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그에 대한 분노가 일었던 것 같다.

옛날 독재의 그늘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어둡게 누르고 있다. 그 그늘은 말한다. “민생과 경제가 중요하다.” 옛날 군사정권에서 부르짖던 구호의 되풀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무관심을 유도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민생이나 경제는 민주주의에 토대를 두어야만 건강하게 실현될 수 있다.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은 사회뿐만 아니라 내 인격의 순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정치는 정말로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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