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건축, 그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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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건축, 그 동상이몽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08.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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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중 건축가, 한남대 건축가 교수

당나라 시인 두보가 말하기를 “부귀는 반드시 고생스런 근면함으로부터 얻어야 하고,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고 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더 읽어야 다섯 수레 가득할까. 서늘해진 오늘 밤, 오래된 책을 꺼내어 들여다본다.

이곳 마암리에 서재를 마련한지, 햇수로 7년. 내 비록 먹고 입는 사치를 안 할망정 옛 선비들처럼 경서 만권이 인테리어의 전부인 집만큼은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다.

아래층 어둑어둑한 작업장에서 위층 빛이 충만한 서재까지 가려면 마음부터 다잡아야 한다.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공간이니 옥루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 단 한 단 침묵을 밟고 하늘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 한 권 한 권은 저마다 등불 하나씩 지닌 작은 암자들이니, 내 서재는 만불전에 다름 아니다. 곳곳에 꽂혀 있는 저기 저 책갈피들은 문학과 건축의 해후를 기념하는 작은 탑들이다. 내가 쓴 책이나 그림, 설계 작품 또한 저 작은 암자 속에 기거하며, 탑을 돌다 때가 차고 인연이 되어 분가한 암자가 아니겠는가?

내가 문학에 주목했던 것은 공간과 더불어 야기되는 집의 의미와 가치를 근본부터 되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 속의 집을 순례하면서 그 안에 기거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기뻐했으며 때로는 분노하기도 했다. 삶의 진실이 몸에 밴 그들에게서 나는 집다운 집은 어떠해야 하는 지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문학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교훈들은 내 몸속에 씨앗처럼 흩뿌려졌다가 어느 날 세상 밖으로 부름을 받아 인연이 닿는 집안 한 구석에 제법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설계를 하면서 나는 ‘이 방은 어떤 장소여야 하는가?’, ‘이 벽은 왜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매번 묻곤 하지만 결코 쉬운 질문들이 아니다. 그렇게 하늘에 묻고, 땅에 묻고 사람에 묻다보면, 그 틈새마다 수많은 시인들이 내 가슴 속에 뿌려놓았던 씨앗들이 저마다 움트느라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수런거림이 굳건한 동기가 되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 어느새 건강하고 아름다운 집 한 채를 떠받치는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된다.

늘 되묻곤 하는 말이지만, 현실에 뿌리내린 문학적 상상력 없이 어찌 방다운 방 하나를 제대로 구축해낼 수 있겠는가? 겉모습이야 그럴 듯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복잡하고 모순으로 그득한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성찰하며 전망하여, 마침내 ‘삶의 형식과 내용’까지 재구성해 내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건축은 물리적인 집만을 짓는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새로운 삶의 비전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편리하고, 튼튼하고, 멋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감동이 있는 집이 되지는 않는다. 집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 주변 환경과 긴밀하게 호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효라 하던가. 새들이 제 소리를 내며 우는 것처럼. 대지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대지든 저마다 암호로 그득한 발신음들을 잘 들어 보면, 고유한 특성이 드러난다. ‘그 자리’에 하늘이 내린 자연(自然), 땅이 점지한 지리(地利), 사람이 염원하는 삶의 조건이 그것이다. 이처럼 ‘그 자리’만의 독특한 조건이 짜임새 있게 잘 드러난 집이어야 비로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런 집다운 집을 상상해내려면 하늘, 땅과 사람 사이 끈끈한 인연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내게 건축과 문학은 동상이몽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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