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나쁜 엄마, 그리고 그냥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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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 나쁜 엄마, 그리고 그냥 엄마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08.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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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정 사회학박사

‘어머니’라는 세 글자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조사해보니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어머니’를 가장 좋은 단어로 선택했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헌신적인 사랑의 존재라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는 엄마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출산은 고통스럽지만, 생명의 탄생은 참으로 경이로운 체험이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눈빛을 대할 때의 기분, 쌔근쌔근 잠든 아기의 숨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행복감, 아이의 성장이 주는 기쁨과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어머니가 사랑의 존재라는 관념은 한편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많은 노동과 헌신을 요구한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많은 노동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젠가 농촌 할머니들을 심층면접하면서 할머니들의 생애 경험을 연구한 적이 있다. 농촌 할머니들의 구술사에서 식구들 먹이고, 입히고, 키우기 위한 노동이 매우 의미있게 나타났다. 몇몇 구술자는 밥 짓고 빨래하는 일이 너무나 고달팠다며 목 놓아 울기까지 했다.

아버지들이 헛기침만으로도 가장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으며 지낼 수 있던 것에 비하면 모성은 실천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매일 식구들이 먹고 쓸 물을 우물에서 길어 오기, 한 겨울 꽁꽁 언 냇가에서 얼음물에 빨래하기, 하루 세끼 밥과 들밥 지어 나르기 등 어머니로서 가족 생계와 보살핌을 위해 수행한 노동은 요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도시화 이전의 모성은 생존에 치우쳐 있었지만 사회변화에 따라 모성의 내용도 변화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자녀들의 건강뿐 아니라 학업, 취미관리, 교우관리, 등 자녀에 관한 모든 것을 엄마가 관리하고 있다.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고 베틀의 베를 끊어 보인 맹모(孟母)가 되어야 한다. 취학 전 아이의 교육에서부터 대학입시, 나아가 취업까지 엄마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입지가 달라지는 세태다.

자녀수가 줄고 양육과 가사 관리도 수월해졌지만, 일에 있어 성차는 여전하다. 단적인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을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은 주당 약 25시간을 가사노동에 쓰는데 비해 남성은 7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있지만 가사분담에 있어 성차는 여전한 것이다.

이 모든 수행이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대가없이 당연시 되어 온 것이다. 일례로 얼마 전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집에서 놉니다’라고 대답한 전업주부가 있었다. 그 날 하루 집에서 한 일을 나열하고 그것을 전문가에게 의뢰했을 경우 비용을 환산해보라고 하자 30만원을 훌쩍 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가족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시작해 비둘기처럼 다정한 가족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수행하는 각종 감정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이처럼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는 직업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여성 스스로 ‘집에서 논다’고 말한다. 가부장제가 기획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탓이다.

특히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히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 말은 당당하게 일하는 엄마들에게 괜한 죄책감을 갖게 한다. 열심히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여성들을 아이들을 떼어놓고 일터에 나가는 나쁜 엄마로 만든다. 그리고 전업주부와 일하는 여성간의 애매한 경계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전업주부는 일하는 여성이 부럽고, 일하는 여성은 전업주부가 부럽다. 그러나 자기희생은 모성의 본성이 아니다.

모성은 자연스럽고 상황에 조응하고 열정적이며 열려 있는 것 아닐까? 엄마는 그냥 엄마로서 당당하고 행복해야 한다. 결혼이나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사랑과 죄의식의 고리에 묶이거나 ‘그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현으로서 출산을 결정하고 양육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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