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얼음 아저씨’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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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얼음 아저씨’를 추모하며
  • 육성준 기자
  • 승인 2012.09.0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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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07년 7월 새벽부터 무덥던 날이었다. 그는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지게에 얼음덩이를 지고 산성을 오르고 있었다. 얼음덩이는 사적지에 아이스크림노점을 차린 김흥환씨가 죄스러운 마음에 마련한 배려였다. 등산객들은 그 얼음에 의지해 더위를 식혔다. 얼음이 놓인 상당산성 등산로의 클라이맥스는 언제부턴가 얼음골이라고 불렸다. “도대체 누가 갖다놓은 얼음이냐”고 묻는 등산객들의 질문에도 처음에는 “모른다”고 답했을 정도로 김씨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알리려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에 의해 멀리 가는 향기처럼 소문이 전해진 것이다. “얼음을 깨지 말라”는 경고문구 대신 얼음사이에 꽃을 넣어 얼린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나무의자와 우체통이 등장하면서 얼음골은 그렇게 명소가 됐다. 그런데 지난 8월25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김흥환씨가 운명을 달리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녘에 얼음과 아이스크림 등을 오토바이에 가득 싣고 산성서문을 향해 오르던 중이었다. 힘이 부쳐 지게 대신 오토바이로 얼음을 나르게 됐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한 오토바이가 뒤집히면서 변을 당한 것이다. 빈소를 찾아보니 유족은 누나와 조카뿐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나온 김씨는 홀어머니(4년 전 사망)를 극진히 모시며 단칸방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누나는 “가난했지만 삶에 대해 원망이나 불평 한 마디 내지 않았던 너무나 착한 동생이었다”고 울먹였다. 사고당시 김씨의 시신 옆에는 두 끼 먹을 도시락이 있었는데 밥과 장아찌만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소 본인도 어려우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에게 가진 것을 나눠 주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복지관을 찾아가서 봉사하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씨의 사연을 마디마디 알지는 못해도 그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김씨가 생전 가꾼 얼음골과 산성정상 좌판에는 등산객들이 가져다 놓은 들꽃이 화사했다. 충북도는 김흥환씨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 건립까지 검토 중이란다. 냄새나는 삶도 있지만 향기로운 죽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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