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유감… 어느 정치학자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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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유감… 어느 정치학자의 고민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11.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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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각 서원대 교수

‘사실’(fact)의 영역과 ‘가치’(value)의 영역이 구분될 수 있을까?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이 질문에 대해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현상, 특히 정치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관찰의 대상인 정치세계와 관찰자인 나의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학자들 중에도 이 양자의 구분이 가능하고 또 구분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필자는 현재 수준의 사회‘과학’ 발전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사실-가치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바라 볼 때도 필자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저 주어진 ‘사실’들을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결과를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만 하면 내 역할이 끝난다고 생각한다면-그런 작업이 결코 수월치는 않지만-마음이 불편할 까닭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앞에 주어진 사실들과 그 사실들이 가져올 어떤 특정의 결과가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 그리고 사실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혹은 우리는 완전히 분리된 객관적 관찰자인가 아니면 일정하게 개입하는 참여자인가.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관전’할 수는 없다.

유체이탈의 대가들

몇 해 전에 베트남 역사를 공부하면서 읽은 것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었다. 옛날 베트남에 훌륭한 청년 장수가 있었는데 이 장수가 외적과 싸우다가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다들 아쉬워하며 이 장수의 장례식을 치렀는데 장례식 절차에서 법도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장례식 절차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장수가 요절하였다고 믿었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이야 이런 얘기를 믿을지 모르지만, 누가 봐도 이건 앞뒤가 뒤바뀐 말도 안 되는 얘기 아닌가? 그러나 이런 식의 얘기를 참으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만 명 이상 있다. 바로 유권자로서 우리 노동자들 말이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요건 강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등은 모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들이다. 모든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나 정당에게 표를 준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는 현대 정당정치의 기본원리에 맞게 노동자들도 그런 것들을 제시하는 후보나 정당에게 표를 주면 된다.

그러나 지난 번 총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듯이 이번 대선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왜 그럴까? 이번에도 역시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어도 그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예 표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왜 그런 후보가 당선가능성이 없을까? 노동자들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 의하면 금년 8월 현재 전체 노동자 수가 1800만 명 가까이 되고 이중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600만 명 가까이 된다. 그 가족 구성원들을 제외하더라도 이 정도 수치면 선거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도 아닌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지금과는 확실히 다른,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쉽고도 어려운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너와 나 우리 노동자와 가족들이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하여 별로 힘들이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돈이 없어도 치료비 걱정하지 않고, 살 만 한 집을 가질 수 있고, 또 고등교육을 받을 수도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세대 안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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