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사랑을 하고 싶다
상태바
B급사랑을 하고 싶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1.16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성재 전 언론인

사랑과 인생,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인류의 숙제인가보다. 역사 이래 많은 문학 작품의 주제가 되고, 또 수많은 종교인,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이야기 해왔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과 인생이 아닐까.

한때 ‘부활’의 네흐류도프와 카츄사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적과 흑’의 쥴리엥 같은 야망에 찬 사랑을 꿈꾸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가 겪어온 현실의 사랑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선 후 맨붕 상태에 빠져있던 나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자기 생애에 이렇게 사랑한 여자는 처음이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여자와 결혼을 결심하고 고백까지 했는데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결혼을 결심하고부터 그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여자의 첫 사랑은 어떤 남자일까, 나를 만나기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와는 어떤 사이였을까, 그녀가 아는 남자들은 또 어떤 사람들일까, 저 여자는 내가 주는 만큼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혹과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나 이제는 자기가 그 여자를 진정 사랑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인해 이렇게 마음이 아파보기는 처음이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랑의 고백인데 가슴이 뛰기보다는 답답했다. 바로 대답하기 어려워 그 친구를 보내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이란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현상적이다. 누군가가 내 눈앞에, 내 삶에 나타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은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있어 무한정 커지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이런 사랑을 3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사랑은 있으되 자라지 않는 사랑- 즉 생명력이 없는 표피적인 사랑은 C급사랑이다.

사랑이 자라서 잎과 꽃을 피우는 사랑- 즉 내일을 꿈꾸게 하는 사랑은 B급사랑이다. 잎과 꽃뿐 아니라 그 뿌리까지도 튼튼하게 하는 사랑- 즉 내가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과거나 아픔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온전한 사랑은 A급사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온전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의 과거를 알고 그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은데 사랑까지 해야 한다니 말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시기, 질투 같은 단어라고 배웠다. 그런데 온전한 사랑을 따라 가다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과거, 나와 함께하지 않았던 그녀의 시간들과 아픔까지도 나에게는 시기와 질투심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시기와 질투심도 함께 자라난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과 시기, 질투, 미움이 동의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는 않았는가?

온전한 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과거에 붙들려 내일조차 지탱하기 어려운 파국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꿈꾸는 온전한 사랑은 영화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릇 사랑은 사람과 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앞으로 누군가와 또는 그 무엇과 사랑을 하게 된다면 가슴 아픈 온전한 사랑은 포기하겠다. 누군가와 또는 그 무엇과 같이 하지 못한 시간은 고스란히 그곳에 남겨두겠다.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때 나는 사랑에 빠졌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처절한 아픔을 남기고 사그러져 갔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사랑을 꿈꾼다. 뒤는 돌아보지 않겠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위에서 내일을 꿈꾸는 B급사랑을 하고 싶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이 분명 아픔만은 아닌 무언가는 남겼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오늘이 있고 오늘은 다시 나를 꿈꿀 수 있게 하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