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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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 아버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1.3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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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충북민예총 부회장

주말 드라마 ‘내딸 서영이’가 드라마 시청률이 48%를 넘기면서 국민드라마로의 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95년 방영된 ‘모래시계’가 퇴근시계가 된 내면에 한국의 서사가 있었듯이 ‘서영이’에도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이 숨어 있는 듯하다.

서영이를 서영이답게 한 데에는 극중 갈등의 요소로서 이삼재, 즉 서영이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삼재는 가족 안에서 스스로 타자를 자처한 인물이다. 가족 구성의 기본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해 가족 내의 타자가 되면서 스스로 잉여인간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로 인한 갈등의 요소들은 드라마의 긴장과 회의를 가져오면서 동정과 연민 혹은 증오를 가져온다.

잉여인간은 투르게네프가 1850년 ‘잉여인간의 수기’를 내놓으면서 당시 러시아에 전파한 유행어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집안도 좋은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현실을 개혁할 의지는 없이 방황하며 자기환멸에 빠지는 사람들이다.

투르게네프보다 앞서 알렉산드르 푸슈킨은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같은 유형의 인물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인생을 헛되이 보내는 바이런적인 한 청년이 자신을 사랑하는 소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도록 방관하고 결투에서 가장 친한 벗을 살해하기에 이른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잉여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의 주인공이다. 그는 게으른 몽상가 귀족으로, 한 번도 직접 방문한 적이 없는 영지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그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언제 일어날까, 그리고 일어난다면 무엇을 할까 궁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 소설가 손창섭의 ‘잉여인간(剩餘人間)’은 전쟁 상흔이 가시지 않은 암울한 시대의 초상(肖像)이다. 치과의원장 서만기와 병원 주위를 맴도는 동창생 채익준·천봉우가 중심인물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 서만기와 달리 비분강개의 허세를 달고 사는 채익준이나 재력 있는 아내 눈치를 살피며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천봉우 모두 사회 부 적응자들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무기력한 군상(群像), 곧 잉여인간들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대변한다. 이삼재라는 ‘아버지 유형’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량생산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어김없이 빚을 안고 가고 있다. 아르바이트와 휴학 복학을 반복하며 대학을 다니며 동생까지 의대를 졸업시킨 서영이는, 누나의 힘이라고 보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이삼재의 무능을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하다.

대학을 졸업한 20대는 취업을 미루는 반면 다급한 60대의 취업률이 사상 최대를 이루는 현상은 현재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문제이다. 그 원인으로 신지식계층의 취업 선호도에 따른 선택의 폭이 적다는 점을 든다.

폼 나는 취업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흔히 상위 계층의 대학을 선호하것과 유사한 경향이라는 것이다. 60대 취업률이 20대 취업률을 웃도는 부조리한 현실은 ‘신세대 갈등’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노인들의 무임승차 반대나 6, 70년대 젊은이였던 지금의 60대를 권위에 대한 복종의 세대로 규정짓는 현상은 단순한 선거 후유증이 아니다.

어느 세대가 잉여인간이 될 것인가는 시대가 시간을 가지고 평가하겠지만 과다한 대학 등록금과 부진한 취업률로 대학 진학률이 둔화된 시기에 반값등록금은 향후 새로운 잉여인간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기 힘들다.

세대 간 내가 아닌 타자에 의해 자아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가장 불안한 기운이다. 서영 씨와 삼재 씨가 서로 잉여인간으로 전락하며 스스로 타자가 아님을 인지할 때 비로소 자기 환멸에서 탈피, 무기력한 군상에서 상생의 관계로 복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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