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들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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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들의 봄
  • 충북인뉴스
  • 승인 2013.03.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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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각 서원대 교수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대학 교정은 새내기들로 북적대고 나름 활기를 띠게 된다. 새내기들을 맞는 교수들도 바빠진다.

오랜 겨울 방학을 끝내고 새 학기를 시작해야 하는 일도 작지 않은 일이지만, 새내기를 맞아 이 아이들은 정말 옹근 4년 동안 그 어느 해 신입생들보다 더 알찬 대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무겁다. 새로 들어온 이 아이들만은 단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 자기 인생의 승리자가 되도록 이끌고 싶다.

어쩌다 보니 먹고 사는 일이 이리도 어렵게 되었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취업 문제가 되고 말았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조금밖에 벌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 아이들 말로 루저(loser)가 되고 만다. 돈을 재대로 벌려면, 그리하여 ‘루저’가 되지 않으려면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려면 대학 4년 동안 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무원 시험을 비롯한 각종 취업 시험 응시를 준비하거나 기타 각종 자격증을 따는 일이다. 해외연수나 유학 경험, 토플 등 어학시험 성적 같은 것들도 일종의 자격증 구실을 한다. 이른바 ‘스펙’(specification) 쌓기 무한경쟁 시대가 온 것이다.

차제에 각종 자격증의 종류를 조사해 봤더니 국가기관이 관장하는 자격증만 해도 몇 백 가지가 되어 그 수를 세기가 힘들 정도이고, 민간기관이 관장하는 자격증까지 다 합치면 만 가지 정도 되니 아예 세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이다. 정치학과 행정학을 가르치는 필자 소속 학과 학생들이 도전해 볼만한 자격증만 추려 봐도 몇 백은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적-인성 검사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적성을 정확히 파악해서 가장 적합한 취업 분야를 고민해서 결정하도록 지도하고, 그리하여 분야가 결정되면 그 분야 각종 시험의 종류와 그 준비 방법 등을 조사하도록 권장하는 일이 된다. 그 지긋지긋한 입시 지옥에서 막 해방된 열아홉 어린 학생들에게 좀 가혹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쩌랴, 세상이 강요하고 있는 일인 것을!

다음에는 졸업할 때까지 계속 면담을 통하여, 때로는 문자메시지나 SNS 등을 통하여 학생 각자의 준비 상태나 진도 등을 체크해서 그에 합당한 지도를 해야 한다. 각자 편한 시간에 교수 찾아오라고 말하면 별 성과가 없으니 학생을 지적해서 언제까지 찾아오라고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졸업을 전후한 시점에 취업에 성공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더 많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작전상 휴학’하거나 학점 취득을 적게 해서 고의로 졸업을 늦추는 학생들도 있다.

교수와 학생 공히 대학이, 사제관계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그런 회의는 그냥 접어두는 게 취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대학의, 사제관계의 이런 모습은 비단 필자 소속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자위나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먹이를 아침에 5개 저녁에 5개 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준다고 하니까 원숭이들이 난리를 부린다.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라고 아우성이다. 왜 하루 10개에서 7개로 줄이느냐고 따지는 원숭이는 없다. 그럴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는가? 혹시 누군가가 부당한 이득을 챙기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하기야 이런 문제를 따진다면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이겠지.

가만 있자, 그렇다면 최고의 지성을 지향하면서 사회 전체를 몇 발짝 떨어진 지점에서 조망하고 시대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이미 원숭이가 되었거나 아니면 원숭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냥 내버려두어도 될 문제인가?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 책임이 대학에게만 있는 것일까? 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어째 봄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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