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황선건 씨의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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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황선건 씨의 인생 2막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3.04.10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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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체육인 삶 접고, 고향 옥천서 택배기사로 새 출발
우리는 우울증의 시대에 살고 있다. 8년 연속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 속에는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이 내재돼 있다.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 제도에서도 찾을 수 있고, 개인의 문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번 호 인스토리의 주인공 황선건(48) 씨는 그런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지 아는 황선건 씨의 인생이야기를 만나보자.


황 씨를 만난 지난 5일, 옥천군에는 3만 5000여명이 참여한 묘목축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택배사업을 하는 황 씨는 지난 몇 일간 묘목을 운반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말이 좋아 택배사업이지, 월급쟁이 택배기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택배회사에 소속돼 자신이 배달한 실적만큼 돈을 번다. 일이 없는 달에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택배기사가 부럽기까지 하다.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황 씨는 언제나 밝은 얼굴로 배달을 한다. 한 번 배달한 거래처는 수첩과 휴대폰, 컴퓨터에 기록하고 머릿속에도 저장한다. 이제 4개월 째 접어든 택배 일에서 황 씨는 자부심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간혹 택배기사라고 무시하는 거래처를 만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우리 산업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 한다.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주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 황 씨는 말한다.

그는 또 “어떤 일에서든 성공하고 싶다. 택배업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달려가고, 한 번 거래한 곳은 꼼꼼히 기억해 다시 설명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또 하나 항상 밝은 얼굴로 고객을 대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짧은 기간이지만 꽤 많은 단골 거래처가 생겼다.

도민체전 금메달만 11개

마흔 여덟, 적지 않은 나이에 택배 일을 시작한 황 씨의 전직은 체육인이다. 부산 경성대 육상팀 감독으로 16년간 팀을 꾸려왔다. 사이사이 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고, 장애인체육 지도자도 겸했다.

황 씨는 오랜 시간동안 고향을 떠나 살았지만 고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신혼집도 옥천에 마련했고, 주말부부로 살아왔다. 해마다 도민체전에 옥천군 대표로 출전해 지금까지 11개의 금메달을 옥천군에 선물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으니, 감독직을 그만둔 2011년까지 30여 년간 외길인생을 걸어온 것이다.

그의 주 종목은 10종경기다. 10종경기는 100m·멀리뛰기·포환던지기·높이뛰기·400m·110m 허들·원반던지기·장대높이뛰기·창던지기·1500m, 이렇게 10개 종목에 출전해 총점수로 순위를 매기는 경기다. 선수시절 종별육상선수권대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선수경력도 가지고 있다.

평생 체육인으로 살길 바랐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학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운동부에 메스를 댔다. 2011년, 그렇게 경성대 육상팀은 해체됐다. 황 씨는 “팀을 운영하려면 돈이 들고, 체육특기생들은 등록금도 내지 않으니 대학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을 잃은 황 씨는 준비 중이던 박사논문에 몰두했다. 그리고 지난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제는 쓸모없을 수도 있는 체육학 박사학위다. “감독을 하면서 우수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운동을 통해 깨달았다. 박사학위도 그 과정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평생을 체육인으로 살았던 그가 택배 일을 택하기까지, 고민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택배 일을 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후회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행복한 삶에 대해 그가 내린 답은 ‘긍정’이다. 몇 년전에는 웃음치료사 자격도 취득했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곧잘 했던 황 씨의 지인들이 “기왕 웃긴 거 제대로 웃겨라”고 조언한 덕이다.


바쁜 와중에도 황 씨는 틈틈이 봉사활동을 한다. 체육꿈나무를 지도하기도 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돌보기도 한다. 웃음이 넘치고 건강한 옥천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명함에서도 그의 인생철학이 묻어난다. 명함 뒷면에 과거 행적을 나열해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자랑스러울 것 없는 내용들도 있다는 것이다. ‘만기제대(육군 상병 군번 92-922688)’ ‘KBS전국노래자랑 본선 출연’과 같은 내용이다. 현역군인도 아닌 단기사병, 적확히 말하면 만기제대가 아니라 소집해제다.

전국노래자랑도 입상도 아닌 출연이 자랑거리의 전부다. 황 씨는 “웃음도 줄 수 있고, 날 기억하게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웃고 다닐 것”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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