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빨리 가자고 600억 들여 길을 뚫어?’
상태바
‘5분빨리 가자고 600억 들여 길을 뚫어?’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4.06.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성옛길 명암지~산성간 도로 개설 '생태환경파괴'지적
청주시 '도로개설은 오랜 주민의 숙원사업'
   
▲ 청주시는 2008년까지 산성옛길을 통과하는 ‘S’ 자 곡선의 도로를 낼 방침이다. 현재 터닦기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산성옛길 보전대책위’를 조직하고, 반생태파괴적인 도로건설을 반대하며 적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 / 육성준 기자
명암타워 맞은편에는 산성으로 오르는 ‘옛길’이 있다. 이를 알리기 위해 길 입구에 상봉재라는 표지판이 있다. 산성에는 중봉재와 상봉재 두 고개가 있고, 상봉재 바로 너머에는 통신문화의 전신인 봉화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성옛길은 30년전 현대식 산성길이 닦이면서 자연스럽게 방치돼, 오히려 아름다운 숲으로 성장했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 숙종 42년 1716년에 충청병마절도사병영이 이곳으로 주둔지를 옮기고, 산성을 석성으로 중수했다고 한다. 조선 효종 2년 1651년전에 지어진 중앙공원에 위치한 병영또한 최고 사령관 충청병마절도사의 ‘숙소’임을 말해준다. 이러한 역사적인 흔적들은 돌위에 새겨진 공적비에서도 잘 나타난다.

문화사랑모임(회장 강태재)은 “5년전 답사를 통해 첫 고개를 넘어서면서 중간고개마루와 마지막 상봉재 가는 길에 총 7~8개의 공적비들을 발견했다. 돌위에 양각과 음각을 사용해 비석을 새긴 형태여서, 그 모양이 흔치않아 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우후’라는 부사령관의 공적비를 비롯, 병사 ‘전문현’ 등의 송덕비들을 찾아볼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답사에서는 글씨들이 뭉개져 있었다면서, 문화재 관리의 소홀함을 탄식했다.

사람가기위해 동물, 식물의 길을 짓밟아

   
▲ 산성에는 조선병영들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가 7~8개 있다. 특이하게도 바위에 양각과 음각으로 비석형태를 만들었다.
‘산성옛길’, 천년여의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다. 이 길에서 청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장수들의 거친숨소리와 우마차들의 말발굽 소리들이 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1차선 정도 폭의 길을 구비구비 오르다 보면 길 옆으로 ‘S’자 곡선의 도로를 내기 위해 지금 한창 산을 깎고 흙을 고르고 있음을 볼수 있다. 그 표시점마다 깃발이 휘날리고 있어 이곳이 바로 시가 추진하고 있는 명암지~산성간 도로개설 사업임을 짐작케 한다.

시는 2002년 처음 명암지~산성간 도로개설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산성주민들의 오랜숙원사업이었는데, 겨울에 통행이 불편하고, 산성을 차들이 다닐수 있도록 만들면 관광객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2002년 당초계획을 보면, 시는 약 364억원을 들여 산을 깎는 절토와 성토를 통해 길을 뚫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2년 3월 사전 환경성 검토서를 통해 “생태축의 하나인 한남금북정맥에 해당하는 산의 능선부나 사면 상부를 통과하여 이 곳에 도로가 생길경우 식생훼손과 동물 이동통로 파괴, 지형과 경관훼손이 우려된다. 따라서 대안 노선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냈다. 따라서 시는 당초 계획을 수정보완했고, 시는 최종안으로 터널 2개소를 뚫고, 산성옛길에 도로를 내는 것으로 발표했다. 예산은 588억으로 늘어나게 됐다.

시는 “2개의 터널통과로 식생훼손을 최소화하고, 도로 인근에 1m의 울타리쳐서, 야생동물을 보호할 것이다. 동물의 이동통로는 따로 만들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3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산성옛길보전대책위’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사업의 부당성을 증거하고 있다. 대책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먼저 늘어난 사업비 220억을 어디서 충당할 것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첫째 이 도로개설사업은 반문화적이며 반생태적이다. 시가 제시한 대안도 현실적으로 거리가 멀다. 동물이 사람처럼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닌데 같은 길로만 다닌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결국 사람이 다니기위해 짐승과 나무의 길을 짓밟는 것이다. 환경성 검토를 통해 나온 대체도로 만들기에 고심할 때이지, 선심행정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된다.”

지난 2003년 12월 본의회를 통해 시의회는 이 사업에 조건부 승인을 낸 바 있다. ‘시민단체와 대안을 모색하여 제시하기 전까지 사업중지’를 내린 것이다. 그리고 지난 6월 2일 추경예산심의에서 올해 사업비 예산으로 27억 300만원이 통과됐다. 이에 김태경 대책위 사무국장은 “시민단체와의 합의가 조건이지만, 어떠한 합의 절차도 없었다. 반민주적인 사업시행”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또한 대책위는 “아직까지 예산의 약 10%가 투자됐다. 앞으로의 과제는 더이상 사업비가 책정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성옛길의 문화적인 가치를 시민들에게 선전해, 시민들의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이다. 또한 반민주적인 절차가 반복된다면 감사원에 청구서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시는 5분 빨리 가기위해 600억 도로를 놓고 있다”며 “사업의 불가피성을 인식하면서도 기필코 산성고개를 넘겠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숲도 문화재로 지정될수 있다

이 사업은 2008년까지 계획이 잡혀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는 3차 우회도로를 만들 계획안을 갖고 있다. 현재 시의 계획대로 목련공원과 2차우회도로가 접합한다면 산성으로 통하는 4차선 도로가 뚫리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산성도로가 이중으로 열린다.

그러나 최근 건설교통부는 시의 계획과 달리 3차우회도로를 2차우회도로에서 불과 200~300m떨어진 곳에 개설할 것을 발표했다.

또한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600억을 가지고 도로건설에 투자하는 것 말고도 산성주민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더 좋은방법이 있을 것이다. 시가 3차우회도로 건설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시민들의 합의를 이끌어야 할때에는 오히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 지방자치라는 말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문화사랑모임의 정지성 봉화특위위원장은 “것대산 높이가 450m이다. 해발높이를 고려한다면 400m의 재를 넘기 위해 산을 뚫고 깨고 파헤지는 것이다. ‘웰빙’을 너두나도 외치는 이 때, 역사와 자연을 만날수 있는 숲을 훼손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행정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문화재청은 마을숲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현재 경상남북도와 울산시, 강원도의 마을숲 250여개를 답사했고, 그 중 문화재 가치가 높은 24개를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조상들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고, 주민들을 공동체로 결속케하는 원천이었던 마을숲이 문화재로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반해 청주시의 유일무이한 역사문화가 숨쉬는 숲은 지금 ‘600억짜리 도로’가 놓일 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