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북인들의 피학증(被虐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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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북인들의 피학증(被虐症)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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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정치부장

신행정수도 후보지가 발표됐다. 천만 다행으로(?) 진천 음성이 포함돼 충북은 면피를 하게 됐다. 더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 여론상 면피는 하게 됐는데, 앞으로가 문제다.

불행하게도 진천 음성이 충남의 3곳을 물리치고 최종 입지로 결정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실적으로 기존의 수도권이 코앞인 진천 음성이 신행정수도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언론에서 제기하는 “충북 또 들러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동안 강력한 후보지로 거론됐던 오송이 제외되고 전혀 뜻밖의 진천 음성이 복수후보지로 결정된 것이 영 찝찝하다. 뭐라고 할까, 꼭 강간당한 기분이다.

15일 정부 발표 후 도내 관련 기관 단체와 언론들이 잽싸게 멍석을 까는 것, 비록 충남 후보지로 최종 결정되더라도 충북은 반사이익이나 개발의 후광을 누려야 한다고 ‘성실하게’ 대변하는 처사가 안스럽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하다.

충북도는 한술 더 떠 발표 이전에 기자들을 충남 후보지로 인솔, 여론무마를 시도했다. 아직은 가설이지만 최종 입지결정에서 진천 음성이 배제되면 보나마나 충북에선 또 ‘충북 소외론’ ‘충북 들러리론’이 판을 칠 것이다.

이러한 자학증세는 최근에 특히 기승을 부렸다. 우리나라 헌정사 이후 충북출신 총리가 한명도 없다, 충북출신 국회의장이 한명도 없다, 이런식의 여론과 언론보도가 횡행한 것이다. 여기엔 지난 17대 총선에서 도내 7개 지역구 모두를 열린우리당에 고스란히 바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깔려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결과는 총리, 국회의장은 커녕, 하찮은 상임위원장 한 자리도 얻지 못할 판이다. 충북의 인물 부재를 탓할 수 밖에 없지만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선 너무 편협하고 소아병적이었다.

충북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귀가 지겹도록 들은 얘기가 충북 소외론이다. 80년대, 90년대를 거쳐 21세기에도 똑같은 얘기다. 이런 신세타령은 줄곧 지방언론의 머리를 장식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이젠 정말 지겨울 때가 됐지 않은가. 차라리 내 탓이오를 외쳐야 속이 편할 것같다.

떡도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야 떨어진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충북이, 충북사람이, 충북정치인들이 타지, 타인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우선 묻고 싶다. 분명한 색깔, 확실한 자기주장보다는 시류에 따른 적당한 순응을 체질화하는 것으론 결코 주목받지 못한다.

정치적 변절자가 압도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번처럼 결정적일 때 책임지지 못하고 슬그머니 발을 빼며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자치단체장들이 충북을 대표한다면 떡줄 놈의 눈에는 충북이 절대 보이지 않는다.

2년전 충청리뷰 검찰사태 때 가장 서러웠던 것은 “무조건 굽히라”는 주변의 성화였다. 이것이 역사의, 정권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충북의 한계다. 제발 이번 만큼은 신행정수도 충북유치가 무산된데 대한 자기합리화를 안 들었으면 한다.

언제까지 마조히즘의 히스테리를 반복할텐가. 차라리 걸쭉하게 욕 한번 신나게 내갈기고 내일을 준비하는게 나을지 모른다. 신행정수도가 충남에 유치되면 충북 도세의 급속한 위축은 불문가지다. 이래도 교언영색의 합리화와 변명으로 일관할텐가. 일개 시민으로서 이것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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