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遺言)비어(悲語)’를 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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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遺言)비어(悲語)’를 벌할 것인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4.04.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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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객원기자
   
유언비어(流言蜚語)라는 사자성어에서 생소한 글자는 바퀴벌레를 뜻하는 ‘비(蜚)’자다. 따라서 유언비어는 떠돌아다니는 해충과 같은 말, 의역하면 ‘가치나 근거가 없는 뜬소문’이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뒤 차관회의를 가졌다. 해양경찰과 군인은 수색, 복지부는 부상자의 신체·정신적 치료, 가족부는 피해가족 지원, 문체부는 유언비어 차단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유언비어에 대한 경계는 신속했으나 걷잡을 수 없었다. 구조가 더뎌지자 정부와 언론을 믿지 못하는 가족들로부터 절규가 쏟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믿지 않은 게 아니라 속았던 것이다.

발단은 사고 직후 “전원구조에 성공했다”는 보도였다. 이어 “368명이 구조됐다”고 했다가 “집계착오이며 실제 구조인원은 164명”이라고 뒤집었다. 탑승인원은 4차례나 수정됐으며 아직까지는 476명이다. “잠수부들이 선내진입에 성공했다”는 발표와 보도는 수차례 번복됐다. 17일 오전 “선내에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정작 장비가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5시였다.

구조에 나선 인력들이 일부러 구조를 미뤘겠는가. 현장의 하소연처럼 조류가 국민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빨랐고, 최악의 구조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장비가 부족해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그래서 안타까움과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들이 현장 발(發)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미·일의 구조지원을 한국정부가 거절했다’ ‘해경이 민간구조를 막고 있다’는 류(類)로, 정부가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의혹제기였다. 다른 하나는 선내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담은 내용이었다.

17일 오전 한 여학생 실종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식당과 객실에 생존자가 많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고, 아버지의 SNS를 통해 확산됐다. 공유는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었고 기대는 점점 분노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민간잠수부를 자칭한 황 모씨가 한 종편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해양경찰이 민간구조를 막고 있으며, 잠수부들이 생존자를 확인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들은 얘기들을 떠들었고, 일부는 꾸며낸 이야기로 확인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족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 맞다.

이때부터 유언비어 수사가 물살을 탔다. 경찰은 “실종자들로부터 발신됐다는 모든 SNS 구조요청이 허위”라고 발표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댓글의혹이 제기되자 “국정원 댓글은 없다”고 서둘러 발표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물론 가족과 국민들이 비탄에 빠진 상황에서 ‘SNS 유희’를 즐긴 자들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허위라는 증거와 최초 유포자, 유포의도 등을 명확히 밝혀야한다.

SNS의 위력은 엄청났다. 침몰하는 과정의 급박함이 문자와 동영상으로 전파됐고, 가족들과 나눈 안부문자는 결국 유언(遺言)이 되어 온 국민을 울렸다. 정부발표와 언론보도가 번번이 절망과 분노를 더하는 상황에서 가족과 국민들은 ‘슬픔의 비어(悲語)’로 공감했다.

정부와 언론은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국민을 보호할 ‘능력의 부재’ 속에서 스스로 유언비어를 남발했다. 정부는 ‘세월호는 대한민국, 선장은 대통령, 선원은 관료, 승객은 국민, 선내방송은 방송3사’라는 SNS 상의 풍자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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