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당하는 자의 피난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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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당하는 자의 피난처, 국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05.2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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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 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코피아포에 위치한 산호세 구리광산이 붕괴하였다. 이 사고로 33명의 광부가 700m 지하에 매몰되었다. 끔찍한 사고였지만 기억하는 대로 결과는 기적의 해피엔딩. 매몰 17일째 전원 생존상황을 확인하였고, 국가역량을 총집결한 필사적인 구조갱도 굴착과 전세계의 응원속에 매몰 67일째 첫 번째 광부 구출을 시작으로 매몰 69일째 33명 전원을 구출한 것이다.

세바스찬 피녜라 대통령은 첫 광부가 구조된 뒤 즉석 연설에서 “칠레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번 구조작업을 통해 (어떠한 문제라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나라임을 스스로 입증했다”며 국민 자존감을 고취했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가 마지막으로 구출되자 그를 껴안고 국가를 선창하였다. 황량한 아타카마 사막의 밤하늘로 울려 퍼지는 광부가족, 취재진, 칠레국민 모두의 목메인 국가 합창은 굳이 애국심을 말하지 않더라도 장관이었고 감동이었을 터이다.

이후 3년 8개월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상상하기 조차 두려운 참사가 발생하였다. 승객 476명을 태운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맹골수도에서 침몰한 것이다. 대낮 해상의 불과 수십미터 코 앞 현장을 두고 첨단 기기를 가진 해양경찰과 해군, 민·관 구조선박과 인력들이 우왕좌왕하며 구조가능 황금시간대를 놓쳐 버렸다.

결국 초기 구조자 172명을 제외한 선실에 갇힌 승객 304명은 사고발생 한 달이 훌쩍 넘은 오늘 까지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사망자(또는 십여명 남은 실종자)중 247명이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어린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사태의 걷잡을 수 없는 확대 과정과 함께 우리는 무너지는 심정으로 세계 14번째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사무장 고 양대홍씨를 제외하면, 학생들에게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말해 놓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이하 관리직 승무원들의 사실상 살인행위, 그런 인성 미달자들을 착취적 조건으로 고용하고, 승객을 화물 취급하는 선박 개조로 사고의 단초를 제공한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이자 종교의 가면 뒤에 숨은 유병언 회장 일족, 병리적 치료가 필요한 악질 인터넷 댓글 유포자들과 소위 지도층의 현장 실언?추태들, 언론의 경망스러움 등을 보며 우리는 인간 신뢰의 본질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국가 시스템의 무능이다. 발생한 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눈에 비친 국가기능의 집행자인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은 전전긍긍?우유부단과 책임회피 속의 보신 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불안을 넘어 불길한 징조는 도대체 없는 곳이 없는 교활한 민간의 물신(物神)과 무능한 관료조직의 천재적인 유착관계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가게 처럼 잠재적 범죄 및 사고발생 요소의 피아(彼我)를 구분할 수 없어 불안하다. 나아가 그동안의 국가시스템과 인물들로는 이 문제의 구조적 타파가 난망 아닌가 해서 불길한 것이다.

산호세 광산의 마지막 매몰광부를 구출해 지상으로 올라온 구조대가 하나의 플래카들를 펼쳤다. “Misi’on Cumplida, Chile”(미시온 쿰플리다 - 임무완수!). 국민을 끝까지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무의 완수에 대한 대국민 보고였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집단 우울증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국가는 고난당하는 자의 최후 피난처인가?” 이 질문에 대해 국가기능의 현재 시점 대행자인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 응답하고 그 응답의 진위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고 심판하느냐에 따라 세월호의 비극 이후를 응시할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생긴다. 제발이지 국민은 제 수준에 맞는 정부만을 가질 뿐이라는 자조는 던져 버리자.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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