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 “휴식은 언제나 목마르다”
상태바
고3 수험생 “휴식은 언제나 목마르다”
  • 오옥균 기자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둥지둥 ‘0교시 수업’, 듣는 둥 마는 둥
집․학교만 오가는 시계추같은 생활에 어느새 길들여져

‘0교시 수업 폐지’ 공방이 도내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다시 한번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매년 바뀌는 입시정책, 부모의 목을 조르는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 밤을 새워 공부해도 만족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경쟁적 입시구조 등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불합리 속에 우리의 아이들은 점점 황폐해져가고 집단적 절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루 9시간 수업 ‘강행군’
도내 고등학교는 지금 한창 기말고사를 치루고 있다. 내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은 학기에 두 번씩 대입시 시험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중압감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오전 7시25분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이 허겁지겁 교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0교시 논쟁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여전히 7시30분전에 교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침밥 먹을 시간을 잠자는 것에 투자하고 빈속으로 등교한다.

7시50분 0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A고등학교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30여명의 학생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죽어 있다’는 말이 썩 어울린다. 오늘 0교시 과목은 사회탐구영역, 몇몇 학생들은 아예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선생님이 야단을 치지 않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현재 진행되는 수업이 그 아이들에겐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이 말하는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변명이 무색하다. 제대로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반에서 3명 내외다. 물론 이 학생들은 혼자 놔둬도 알아서 공부하는 소위 우열반에 편성된 학생들이다.

0교시 수업이 끝나고 1교시에 들어가기 전 20분의 휴식시간이 학생들에게는 서둘러 등교하느라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수돗가에는 미처 씻지 못한 학생들로 만원이다. 매점에는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이렇게 청주의 고3 학생들은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 6시가 되서야 정규수업 6시간과 0교시를 포함한 보충수업 3시간, 총 9시간의 수업을 마무리 짓는다. 이제는 저녁을 먹고 12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 된다. 3학년 김충만(18. 가명)군은 우열반 학생이다. 김 군에게는 우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1시간30분의 수업이 더 남았다. 예나 지금이나 일류고등학교 평가의 잣대는 ‘서울대에 몇 명이나 합격했는갗이다. 그런 이유로 선생님들은 일부 상위학생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의 평가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신 기간’ 소리없는 전쟁
12시가 되면 지칠대로 지친 학생들이 힘겹게 집으로 향해 발길을 옮긴다. 서로서로 작별인사를 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혈기왕성과는 거리가 멀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김 군은 “아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3시 이전에 자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라고 분위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아침 6시면 등교준비를 하는 것이 현재의 고3 학생의 모습이다.

토요일이면 보충수업을 포함해 5시간의 수업을 받고 저녁 6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 다음날, 일요일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주말에 학생들은 더욱 바쁘다. 주중에 시간을 낼 수 없어 할 수 없이 사교육비 절감을 하게 된 학생들은 주말이면 분주히 움직인다. 부족한 과목을 학원에서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주말을 이용해 문화적욕구를 충족한다던가 하는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사치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주워진다면 그냥 잠이나 푹 자는 것이 학생들의 유일한 소망이다. “고3이 다 그렇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0교시 수업’을 하든지 안하든지 어차피 상관없어요. 우리는 올 한해 인간이길 포기했읍니다”라고 웃는 김충만 군의 얼굴에서 수험생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