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리업계 총체적 비리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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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수리업계 총체적 비리 ‘충격’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4.09.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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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등 보수 과정서 보조금 수십 억원 ‘꿀꺽’… 건설업체 대표 등 5명 구속
문화재 수리공사의 총체적 비리 구조가 드러났다. 특히 문화재 수리과정에 전 한국문화재수리협회장 및 기술자, 전통사찰 주지까지 비리에 관여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지청장 위재천)은 충주 탄금대 등 도내 문화재 보수과정에서 수십억 원의 보조금을 챙긴 건설업체 대표 A씨(62)와 문화재 수리업체 대표 B씨(53) 등 5명을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건설업체 대표와 문화재 수리 근로자 등 17명과 함께 공모한 C씨(64) 등 사찰주지 4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의 경력과 명성을 배경으로 충주지역 4개 무자격 문화재수리업체에 기술자 및 기능자들의 자격증을 소개·대여해주고, 문화재 수리공사 금액의 10%를 지급받는 방식으로 지자체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다.

B씨는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A씨로부터 문화재 수리 근로자 자격증을 대여 받아 공사를 낙찰 받은 뒤 다른 근로자에게 다시 대여하는 방식으로 지자체 보조금 14억 원 상당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한국문화재수리협회장을 지내는 등 업계 대부로 불리며 그가 운영한 업체는 숭례문 복원공사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문화재 수리업체에 자격증만 대여해도 그 대가인 속칭 ‘수첩값’으로 공사대금의 10% 가량은 A씨의 몫이었던 것이다.

전직 문화재수리협회장 등 26명 기소

더 나아가 A씨는 도내 절반에 해당하는 충주지역 6개 수리업체 가운데 4개 업체와 기술자들의 통장까지 관리하면서 브로커 역할을 했다.

A씨의 영향력 하에 공사를 낙찰 받은 이들 업체는 회사명의만 빌려준 채 무자격자 등에게 공사를 넘겨 속칭 ‘부금’ 명목으로만 또 다시 공사료의 7% 가량을 챙겼다.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이 같은 방법으로 도내 64개 문화재 보수 공사에 관여해 A씨가 가로챈 보조금만 무려 80억 원에 달한다.

사찰 주지 4명은 무자격 공사업자와 짜고 6건의 사찰 수리비를 부풀려 자부담금을 낸 것처럼 속이는 수법으로 5억 8000만 원의 보조금을 뒷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이들이 불법으로 수리한 문화재는 보물인 청주 용화사와 사적 제121호 청주 상당산성, 명승 제42호인 충주 탄금대 등 충북지역에서만 105건에 이른다.

문화재수리는 문화재수리업자로 등록한 수리업체만 가능하다. 현행법상 문화재수리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능력(보존과학기술자 1명, 보존처리공 1명, 훈증공·세척공·표구공 중 1명)을 보유하고, 5000만 원 이상의 자본금 등 요건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해야 한다.

전문 문화재수리업자는 문화재 수리를 직접 수행해야 하며, 하도급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엄격한 요건을 갖춘 기술자들만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문화재 수리·복원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점을 착안, 문화재수리업계의 대부라 불리는 A씨는 문화재수리업체에 기술자들의 자격증을 대여한 뒤 문화재수리업체를 대신해 기술자들에게 자격증 대여료로 기술자당 연 1000만~2500만 원을 지급하고, 그 대가로 공사대금의 9~10%를 받은 것이다.

더욱이 문화재수리공사는 문화재수리기술자가 현장에 상주해 감독해야 하지만 이와 같은 불법적인 구조로 인해 적정 문화재 수리비용이 수첩값, 부금 등으로 새나가고 결국 무자격자에 의해 공사가 시행돼 부실공사와 직결됐다.

전통사찰 역시 자부담금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국가 또는 지자체로부터 공사에 관한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점에 착안, 자부담금을 적법하게 지급한 것처럼 속여 보조금을 횡령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기술자들의 자격증 대여가 공공연한 관행임에도 업체와 기술자 자격증 대여를 연결시켜주는 브로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며 “(문화재청은)불법 하도급으로 인한 무자격자의 문화재 수리 만연에 대해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감리 강화 및 제도 개선 요구

검찰은 그동안 대부분 약식기소에 그쳤던 유사사건과 달리 이번 비리는 구속 수사하는 첫 사례로 남겼다. 또 수사과정에서 현장 감독공무원이 무자격 문화재 수리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보조금 전액을 회수하도록 해당 지자체에 통보해 조치하는 한편 문화재청에 사찰 수리에 대한 자부담금 대납 관행 등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 마련 등을 요청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해당 지자체들은 어떤 문화재가 무자격자에게 수리됐는지 모르고 있다. 모 지자체 문화재 담당자는 “어떤 문화재를 수리했는지 모른다”며 “아직 결과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문화재 수리업계에 만연한 비리를 지속적으로 단속하는 한편 국무총리실 부패척결추진단에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건의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화재 수리업계의 구조적 비리가 문화재 수리 부실공사를 야기하고, 국고 낭비를 초래했다”며 “정부부처와 지자체가 철저히 감독할 수 있도록 감리제도 강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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