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교복·체육대회 지금도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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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교복·체육대회 지금도 부러워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5.05.14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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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이 없는 아이들…학교 떠나면 ‘잉여인간’
낮엔 검정고시 공부, 저녁엔 아르바이트 나서

학교 밖 청소년, 길을 묻다
지원, 수민, 형재 이야기

지학교 밖 청소년을 만났다. 이지원(19·가명), 김수민(19·가명), 정형재(21·가명)군은 학교를 그만둔 지 3년이 흘렀다. 지금은 오후에 청주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센터)에서 여는 검정고시 강좌를 듣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검정고시는 4월과 8월 두 번 치러진다. 센터에선 검정고시 교육 외에도 바리스타, 기타강습 프로그램을 연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재미없는 학교

지원 군은 “고등학교를 한 달 다니고 그만뒀어요. 재미가 없었어요. 학교 다니는 것 자체는 괜찮았는데 그 외 모든 것들은 딱딱하고 갑갑했어요. 많이 맞기도 했고요. 수업시간에 혼난 기억 밖에 없어요. 같은 반에 장애인 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했어요. 끝까지 진실을 말했는데 제 말을 믿지 않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제 친구가 기침을 하니까 선생님이 장애인이냐고 놀렸어요. 그게 너무 화가 나서 대들었다가 엄청 맞았죠. 모든 게 다 귀찮아서 자퇴서를 냈어요. 나중에 선생님이 저 때문에 우울증 걸렸다고 얘기하는 데 정말 위선자처럼 느껴졌어요. 아직도 재수없어요”라고 말했다.

▲ 학교 밖 청소년들은 미래가 두렵다. 사회에 진입하기 전부터 하나의 벽을 만난 느낌이다. 청주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그 후 지원 군은 “잉여스럽게” 살았다고 말한다. “주변에 친구들은 모두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요. 친형이 자퇴를 했기 때문에 같이 게임하고 밤새고 그랬어요.” 밤에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후 돈이 생기면 생활비로 쓰는 식이었다.

“노는 게 지겹지는 않아요. 매일 놀거리를 만들면 되니까요. 세상에 놀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도 전 오토바이는 안타요. 위험하니까요.”

지원 군은 형을 따라 센터를 왔고, 지난해부터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 오면 선생님(상담교사)들이 밥을 해줘요. 설거지는 당연히 우리 몫이죠. 우리가 밥을 하면 설거지는 선생님들이 해주세요. 규칙인 셈이죠. 여기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잘 맞춰줘요. 그러기가 힘든데 고생 많이 하세요. 천사 같아요. 같이 2박 3일 동안 계곡에 놀러가기도 하고, 에버랜드도 갔어요. 그래도 교복을 입지 못하는 거, 축제나 체육대회 못가는 거는 좀 그래요. 가고 싶어요. 물론 갈 수는 있겠지만 좀 그렇잖아요.”

지원 군의 오랜 꿈은 군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팔에 새긴 문신을 보여준다. ‘불행은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보여준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난해 가을에 새겼는데, 그 문신 때문에 군인 못 될 것 같아요. 군인이 되려면 문신 지우고 가야 한다는 데 엄청 아플 것 같아요. 군인이 멋있잖아요. 여가부는 정말 싫어요. 말도 안 되는 게임 셧다운제 같은 거 했잖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뭐가 필요한지 정말 몰라요. 남성부가 있으면 좋겠어요. 왜 남성부는 없는 걸까요. 우리나라 남자들이 얼마나 역차별 받는데요.”

일 하고도 돈 못 받아

형재 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떠났다. 출석률이 저조해 자연스럽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매일 학교에 지각했어요.” 형재 군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택배, 용역, 편의점, 뷔페집, 고깃집에서 돈을 벌었다.

“용역은 건설현장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일명 노가다죠. 겨울에는 일이 쉬어요. 아주 꿀맛이죠. 그런데 춥기는 엄청 추워요. 택배는 이틀 일하고 하루 쉬어요. 몸이 힘들어서 계속은 못해요. 돈 버는 게 힘들다는 거 정말 잘 알았어요. 욕도 많이 얻었죠.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고 일하고도 돈을 못 받기도 했죠. 면접 보러 갔을 때 자퇴했다고 하면 아예 더 이상 말을 듣지도 않았어요. 자퇴하면 무조건 이상한 놈으로 보는 것 같아요. 택배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했는데 주민등록번호를 가짜로 만들게 했어요. 청소년들은 택배하면 불법이라서 그런데요.”

그는 올해 안에 군 입대를 할 예정이다. “군대에 갔다 와선 공장에 들어가서 일해야죠. 제일 되고 싶은 건 아빠에요. 친구 같은 아빠가 돼주고 싶어요. 다른 생각은 없어요.”

가장 불안한 건 미래

수민 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역도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도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3학년 때 유망주로 꼽혀 장학금을 받고 충북체고에 입학했다. 체고는 입학 전 1월부터 합숙훈련을 했다.

훈련을 하다가 담이 걸렸지만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선배들의 폭행도 있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허리 부상이 왔고 이를 감독한테 얘기했지만 오히려 혼나기만 했다. 결국 3월에 바로 학교를 그만뒀다.

“방황도 했지만 일단 후련했어요. 대학교 보내 준다고 해서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운동하느라 그동안 놀지 못했던 거 다 해봤어요. 피시방, 당구장, 노래방, 술집을 전전했죠. 그러다가 맘 잡고 지난해 4월 검정고시를 봤어요. 합격은 했는데 점수를 높이려고 다시 센터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센터는 공짜로 공부를 배 울 수 있어요. 대학을 가려고요. 뷰티학과에 가고 싶어요. 여기서 직업 체험을 하면서 미용일을 알게 됐는데 제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아요. 진로를 정했죠.”

형재 군은 학교를 그만 둔 후 가장 불안한 것은 ‘미래’였다고 말한다. 지원 군도 이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우리들의 삶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이들에게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1학년에 300명이 다닌다고 해요. 그만두는 애들은 25명 정도겠죠. 그런데 그 25명을 위해 학교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원망하지도 않고, 바라는 것도 없어요. 자퇴한 애들에겐 개인적인 문제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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