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미소 띠고 편히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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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미소 띠고 편히 가시게
  • 충청리뷰
  • 승인 2015.09.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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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의 글>민경욱 에버코스 지게차 사망, 故 이성태 씨 매형

* 회사의 늑장 병원 대처로 숨진 (주)에버코스 지게차 사망사건과 관련, 유족이 본보에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와 전문을 게재합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풀벌레만 소리 애처로운 가을이네. 자네를 보내던 마지막 날,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고 죄 있는 사람들의 죗값을 밝히겠다고 눈물로 자네와 자네 누이에게 다짐했는데. 열흘 넘는 시간동안 교통사고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던 경찰, 가볍게 사업주의 책임을 벌금 500만원 정도로 예단하던 노동청 공무원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절망감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간간이 뉴스에서나 짧게 접하던 억울한 사람들의 심정을 그때서야 조금 알게 된 거 같아.

그래도 자네 가는 길에 억울함과 원통함이 많아서일까? 몇몇 분이 참 많이 애써 주신 덕분에 정말 많은 분들이 분노해주고, 우리의 슬픔에 진심어린 위로와 애도를 표해주셨네. 그 덕분에 이제 서야 처음부터 당연히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네.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자네에게 참 미안한 일이 하나 있어. 차마 나도 감당하기 힘든 자네 마지막 가는 길을 자네 누이와 아버님 어머님께 소상히 알릴 수 없었어. 어이없는 농간에 묻힐까 두려워 세상에 알린 것이 가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아.

자네 누이와 어머님은 작년에 다리 다친 뒤에 출근을 독촉하는 회사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출근하는 자네를 보고, 아침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철야 근무하고 와서 힘들어 하는 자네를 보고서도. 그만두라고 말 한마디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리셨네.

누이와 어머님은, 평소 친하다던 사람들로부터 아스팔트 위에 방치된 사실을 듣고 나서 “우리 성태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하고 탄식하시네.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변명하지만 정말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어머님과 아내의 흐느낌에 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흘려 내려도 나는 차마 뭐라 말 한마디 할 수 없네. 정작 자네를 이렇게 만들고 마지막 인사할 기회조차 앗아간 회사는 아직도 저리 뻔뻔한데. 왜 자네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만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떠나게. 자네가 하늘나라 가서 어떻게 하냐는 할머니 말에, “언태 삼톤, 나 보러 올 거야.”라며 걱정 말라는 자네 조카가 아버님 어머님의 삶의 이유와 희망이 되어 줄 거야. 나도 아버님 어머님 여생 잘 모실게. 자네 누이도 더욱 아껴 줄게. 그리고 조마간 분노와 슬픔은 덮어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라도 노력할게.

다시는 이런 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하시는 분들과 함께, 끝까지 눈 크게 뜨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터이니 그간 잘해준 거 하나 없는 못 미더울 매형이지만 부디 이쪽 일은 걱정 마시게. 그 착한 미소를 가지고 편히 쉬시게나.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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