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분간 54번 박수 받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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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분간 54번 박수 받은 대통령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5.10.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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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로 편지/ 권혁상 편집국장
▲ 권혁상 편집국장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직접 발언했다. 지난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일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결론 앞에 ‘저부터’라는 단호한 약속을 전제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 언급했으면 일단 믿어주는 게 우리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야당이 제보로 찾아낸 청와대 주도 ‘역사교과서 T/F팀’ 사무실조차 국민에게 선선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충북대는 지난 추석 때부터 장기출장중인 사무국장이 ‘역사교과서 T/F팀’ 단장이라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인데 내일 아침 해가 뜰 것을 믿으란 얘기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정치인의 말은 역시 ‘립서비스’일 뿐이라는 속설을 증명해 보였다.

대선후보 때는 검찰의 독립성을 누차 강조했으나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찍어내기’ 사건이 터졌다. 권력과 충돌해 자의로 사퇴한 경우는 있었지만 개인신상 털기로 억지로 옷을 벗긴 적은 없었다. 또한 후보시절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국회 중심 정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원내대표를 가만두지 않았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한방으로 날라갔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이런 자가당착적 정치적 위딩(wording)을 구사한 국정 책임자가 있었는가 싶다.

역사에 대한 일사분란한 교육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김일성이 축지법을 써서 항일 무장투쟁을 했다는 북한 교과서가 그 짝이다. 북한 이외에 국정 교과서를 시행하는 나라는 러시아, 베트남, 몽골,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이다.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전환한 뒤 다시 국정체제로 돌아간 나라는 단 한곳도 없다. 해외 학자와 언론들도 우리 정부의 국정전환에 조롱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수많은 학자·사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이상이다.”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성명에서 올바른 역사에 대해 함축했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해야 할 일은 ‘경제살리기’이지 ‘역사 국정화’가 아니다. 박 대통령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5·16 혁명을 폐기한 장본인은 청와대에서 ‘아저씨’로 불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유신헌법에 ‘5·16 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1987년 개정된 헌법에서 아예 삭제했다. 이후 김영삼 문민정부의 검정교과서에 ‘5·16 쿠데타’로 역사적 정의가 내려졌다.

이번 국정교과서 논란을 통해 다시금 대통령의 소통부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 TV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증세가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다른 후보는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아니예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답한 후보가 지금의 박 대통령이다. 이런 식의 대화는 누가 봐도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소통이 아닌 고통이다. 물론 대통령이 이런 고통에 무지한 데는 이유가 있다. 27일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41분 동안 여당 의원들은 총 54번의 박수를 보냈다.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박수에 귀가 멀면 고통의 한숨이 들릴 리 만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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