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업 이런 CEO>
청원출신 유형재 씨 제주에서 ‘형제농장’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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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업 이런 CEO>
청원출신 유형재 씨 제주에서 ‘형제농장’경영
  • 임철의 기자
  • 승인 2004.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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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때 제주도 정책해 30여년 만에 대농장 일궈
6만평 농장에 산란 계 5만 6000마리…계사만18채
그가 제주도에 발은 디딘 때는 34년 전인 1970년이었다. 한창 나이인 28세였다. 그는 30년 가까이 살아온 환경과는 정반대의 상황에 몸을 훌쩍 던지기로 결심했다. 바다가 전혀 없는 충북 출신 청년이 사방팔방 바다로만 둘러싸인 제주도에 새 삶의 뿌리를 내리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출발은 미미했다. 하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작게,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에서 ‘닭’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그러나 3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반백이 된 그의 머리뿐 아니라 그가 일궈온 사업에서 ‘상전벽해’의 발전을 이뤄냈다.

   
▲ 제주도에서 산란용 농장을 대규모로 운영하는 청원 출신 유형재 씨(61)가 자신이 30년 넘게 일군 형제농장의 한 대형 계사에서 닭과 달걀을 살펴보고 있다.
청주 출신 유형재 씨(61)가 제주도에서 기업 규모의 산란 농장을 운영하며 현지 달걀 소비시장의 메이저 공급업자로 활동하고 있어 화제다.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에서 그가 터전을 잡고 일궈낸 ‘형제농장’은 실로 규모가 엄청났다.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농장은 한 눈에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여기에 다 자란 성계가 5만 마리 있습니다. 병아리는 1만 5000마리 정도고요. 이 곳에서 나오는 달걀이 하루에 4만개에 달합니다. 형제농장은 육계가 아닌 산란용 닭만을 키우고 있죠.”

드넓은 곳에 실현한 양계농장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6만 마리 가까운 닭이 사육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할 듯 싶었다.
계사만 18채에 달했는데, 게 중에는 길이가 110m에 면적이 400평이 넘는 것도 있었다. 또 6만평에 달하는 농장 곳곳에는 사료비축을 위한 사일로들이 여러 개 설치돼 있어 농장의 크기를 짐작케 했다.

“요즘 웰빙이라는 게 유행한다지 않습니까? 달걀도 그렇습니다. 무정란보다는 수정을 시킨 유정란, 사람이 먹어도 좋은 여러 유효성분을 먹여 생산한 기능성 달걀의 인기가 높습니다. 형제농장에서는 암탉 10마리당 수탉 1마리를 방사, 건강한 유정란을 만들어내고 있는 데 생산하기 바쁘게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형제농장표 달걀은 제주도 현지에서 ‘제주 청정란’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말 그대로 부화하기도 전에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었다. 제주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형제농장에선 그랜드마트 등 현지의 대형마트에 달걀을 전량 공급하고 있다.

형제농장의 월 평균 매출액은 7000만∼8000만원 가량으로 사료 값만 5000만원이 소요될 만큼 대규모다. “매력이 있죠. 잘 키운 만큼 보람도 있고. 그런데 얼마 전에 터진 조류독감 등 악재가 터졌다 하면 한 달에 수천만 원 적자보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이 자체가 큰 사업인 셈이죠.”

9형제중 대부분 고향 청주에 거주

내내 궁금했다. 왜 고향 청주(청주고 35회 졸업)를 굳이 떠나 제주도를 정착지로 선택했는지, 또 괜찮은 대학(경희대 경제학과)에 진학해 남 부럽지 않게 교육의 혜택을 받을 만큼 받은 그가 사회 진입 문턱에서 순탄한 ‘넥타이의 길’을 마다하고 180도의 인생전환을 꿈꾸었는지. 사업대상이 왜 하필이면 닭인지.

하지만 유형재 대표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엔 아예 못 들은 것처럼 행동했다. 지난 세월 숱하게 자문해 봤을 물음, 그래서 오래 전에 해답을 만들어 놓았던 질문이어서였을까. 아무튼 한참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업을 이만큼 키워놓기까지 숱한 사연이 묻어있었다 해도 긴 긴 세월의 흐름에 깎이고 깎여 ‘모범 답안’ 밖에 더 내놓게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듯 했다.

유 대표는 어렵게 말문을 열더니 “어렸을 적부터 집마당을 돌아다니던 닭이 그냥 좋았고...뭐 딱히 짚어 말하긴 곤란하지만 젊은 나이에 미지의 땅인 제주도에서 모험을 걸고 싶었던 게지요”라며 마치 남 얘기하듯 했다. 그러고 이내 덧붙여진 말은 이랬다. “사실 크게 내세울 게 없어서…”

속물이 아니더라도 드넓은 농장, 그 곳에서 매일 건강한 달걀들을 생산하는 수만마리의 닭을 보면서 그의 말은 겸손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유형재 대표는 태어나서 뼈를 키운 세월보다 훨씬 긴 기간을 타향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왔지만 자신을 여전히 ‘충북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해 자신의 환갑 때 청주에 있는 형제(총 9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갹출, 선물해 준 소렌토 승용차는 ‘충북 31무 6988’라는 번호판을 자랑스레 달고 있다. 유 대표는 “형제들은 물론 여든여덟이 되신 어머니께서 청원 오송에서 아직 살아 계시고 있는 데 어찌 고향을 한시라도 잊을 수 있겠느냐”며 “청주∼제주간 직항로가 개설된 이후에는 바로 옆 마을에 고향이 있는 기분이고 실제로 편리해진 교통덕분에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유 대표의 아홉 형제(유 대표는 셋째)중 다섯째 동생 인재씨는 고향인 청원의 강외농협에서 전무(상임이사)로 일하고 있고, 여섯째 문재씨는 미국 라스베이가스 아세안상공회의소 회장 겸 한인회 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재씨는 현지 회계사이기도 하다.

또 유 대표의 2녀중 장녀는 미국 유학중이고 둘째는 제주시 공무원으로 제주시가 만든 ‘교통방송’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지역 방송국에 실시간으로 제주 일원의 교통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유 대표는 현지에서 자신의 차량으로 기자를 안내하는 도중 딸이 교통방송 스튜디오에서 지역방송 채널을 통해 교통상황을 브리핑하는 시각이 되자 곧 라디오 채널을 맞춰 들려 줄 만큼 은근한 부정을 드러내 보였다.

대한양계협회 제주도협회 지부장을 맡고, 또 장학사업으로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그는 “부끄럽지 않은 충북사람으로 제2의 고향 제주도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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