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탄신제, 언제까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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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탄신제, 언제까지 해야 하나
  • 오옥균
  • 승인 2016.12.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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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 불만 시민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정국에 폭발
추모제 아닌 탄신제에 700만원 예산 지원…중단 요구

2000년 11월 29일, 육영수 여사의 고향 옥천에서 육 여사의 탄신(?)을 기념하고 숭모(崇慕·우러러 사모하다)하는 ‘탄신 숭모제(이하 탄신제)’가 열렸다. 그때부터 육 여사의 생일인 11월 29일에 맞춰 해마다 탄신제가 열린다. 올해는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압박을 받는 엄중한 시국이었지만 강행됐다.

하지만 상황은 사뭇 달랐다. 500명이상 운집했던 예년과 달리 이날 행사에는 ‘박해모(박근혜를 사랑하는 해병들의 모임)’ ‘박사모’ 등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 100여명만이 참석했다. 탄신제가 열린 옥천 관성회관 객석(499석)은 처음으로 휑하게 비었다.

옥천 여성회관에 앞에 세워진 육영수 여사 동상. 사진/육성준 기자

 

 

 

탄신제, 임금이나 성인(聖人) 대상

불청객도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옥천국민행동(이하 옥천국민행동)’이 관성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 이와 별개로 한쪽에서는 오대성 옥천국민행동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구속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옥천지역 노조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옥천국민행동은 육 여사의 탄신제에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고 옥천군에 요구했다. 옥천군은 2000년 첫 탄신제 때 150만원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는 7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옥천국민행동은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도 받지 않은 육영수 여사의 탄신제에 군민 혈세를 지원하는 옥천군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충돌도 일어났다. 탄신제에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옥천국민행동 회원들에게 고성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헐벗고 굶주렸던 이 나라를 발전시킨 게 누구냐. 왜 남의 잔치집을 초상집으로 만드냐"고 소리쳤다.

 

올해로 16년째 열리는 탄신제는 여느 때와 달랐다. 참석인원도 예년만 못하고, 행사내용도 단출했다. 주최 측인 옥천문화원 김승룡 원장은 “박 대통령 퇴진 촛불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아 최대한 간략하게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탄신제에는 전통 춤 공연 등 식전행사를 진행했고, 육 여사가 교사로 근무했던 옥천여중 관악부의 공연도 빠지지 않았지만 올해는 시국을 의식해 모두 취소했다. 해마다 초헌관·아헌관으로 참여했던 옥천군수와 군의장도 올해는 불참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옥천군민들의 참여다. 지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반시민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옥천 육씨 종친회와 민족중흥회 옥천지역회를 비롯한 지역 보수단체 회원들도 집행부만 참여했을 뿐 대부분 불참했다.

 

무조건적인 지지 강요 분위기

16년째 이어져오던 행사가 국정농단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전근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탄신제에 예산을 지원할 것인가와 육영수 여사에 대한 재평가다.

주최 측도 이를 의식한 듯 몇 해 전부터 탄신제 대신 ‘탄신 숭모제(崇慕祭)’라는 표현을 쓴다. 탄신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이나 성인(聖人)과 같은 높거나 훌륭한 사람이 태어난 날’을 말한다. 육 여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신격화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과 추종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표현하고, 육 여사를 연결선상에 놓는다. 이에 대한 반발이다.

오대성 옥천국민행동 공동대표는 “옥천군이 매년 8월 15일에 열리는 육 여사 추모식에도 예산을 지원하지만 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며 “영부인이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점에서 육 여사의 사망일에 그를 추모하는 것은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별개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육 여사에 대한 재평가다. 육 여사의 이미지는 ‘인자’ ‘온화’라는 단어로 대표된다. 생전에 보육원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내용이 자주 언론에 공개됐고, 항상 항복을 입었던 이미지가 겹치면서 생겨난 이미지다. 육 여사의 탄신제를 지지하는 옥천지역 인사들은 이를 근거로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연관짓기를 거부한다.

반면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육 여사의 생전활동이 여느 영부인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옥천군이 육영수 생가 복원사업에 수십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2004년에도 지역에서 제기됐던 문제였다. 최근에는 지근거리에서 육 여사를 겪은 김종필 전 총리의 충격적인 평가까지 더해지면서 재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한편 탄신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무관심에 대해 지역 관계자는 감췄던 속내가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관계자는 “옥천에서는 육 여사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런 분위기를 못마땅해 했지만 드러내지 못하다가 박 대통령의 실정을 계기로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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