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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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충청리뷰
  • 승인 2019.01.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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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애국가 변경 논란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있어 왔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전력이 드러나면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실리면서 부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안익태가 친일을 했기 때문에 그가 작곡한 애국가는 적절치 않다’가 반대논리의 핵심이었다면 현재는 뼛속까지 친일이었던 그의 적극적인 행적이 하나 둘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차원에서 이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다.

이 교수가 쓴 책 <안익태 케이스-국가 상징에 대한 한 연구>가 새해 들자마자 서점에 나오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안익태의 외국활동을 추적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결론은 ‘안익태는 일제와 나치에 부역한 글로벌 친일분자’라는 것이다. 때를 맞춰 지난 17일 밤 EBS는 안익태 특집을 다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조시켰으며, MBC도 뉴스데스크를 통해 육군가를 비롯해 현재 군에서 불리고 있는 군가 중 무려 35곡이 친일파의 작품이라고 단독보도해 음악가들의 친일논란에 불을 지폈다. 특히 EBS 방송내용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만큼 파장이 컸다. 대한민국을 최고로 상징하는 애국가조차 친일의 그늘에서 한발 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그저 한 숨만 나왔던 것이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이같은 사실에 근거해 애국가 변경을 위한 국민서명운동 움직임까지 보이자 C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긴급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애국가 교체를 반대한다는 응답이 58.8%로 나와 찬성한다의 24.4%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문제는 이 또한 영호남이라는 지역 간, 세대 간 그리고 개인의 이념과 정당지지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으로, 만약 이 문제가 앞으로 더 공론화될 경우 국민갈등의 또 다른 빌미를 줄게 뻔하다는 사실이다. 호남보다는 영남, 나이가 많을수록, 보수 및 자유한국당 지지자 일수록 반대가 월등히 높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는 법적으로 지정된 공식 국가가 아니다. 관행적으로 불리던 것에 안익태가 다시 곡을 붙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안익태의 애국가는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지며 국가(國歌)대접을 받지만 공식적인 지위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가칭 ‘국가 제정위원회’ 등 공식 기구를 꾸려 애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잊을만하면 터져나왔다. 애국가에 대한 원조논쟁은 수도없이 많았지만 학계와 국민들 사이에서 대체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이렇다.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1907년을 전후로 조국애와 충성심, 자주의식을 고취하려 지금의 노랫말에 당시 유행하던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 곡을 붙여 임시정부가 이 를 애국가로 채택해 부르면서 독립투사와 광복군을 중심으로 국외에서 더 많이 퍼지게 됐고, 안익태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유럽으로 떠날 즈음 지금의 그 가사에 다시 곡을 만들어 애국가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해영 교수에 따르면 1935년께 안익태가 미국에서 지금의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 판타지’를 초연할 때만 해도 “우리민족운동과 애국정신을 높이는데 대단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혀 애국가를 작곡할 당시부터 친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익태의 한국사랑은 남달랐고 스페인 백작의 딸로 그의 부인이 된 로리타 안(2009년 작고)은 생전에 한국과 한국사람이라면 무조건 극진하게 대했다고 한다. 또한 안익태가 코리아 판타지를 연주할 때는 세계 어느 곳이든 합창에 들어가는 애국가 부분은 반드시 한국어로 부르게 했다. 일본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친일논란이 불거진 이후로는 부인과 세 딸이 한국에 대해 크게 실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안익태의 본격적인 친일행적은 2차 대전 발발(1939년) 이후로 추정돼 과연 그가 동서고금 모든 지식인들의 딜레마라는, 전쟁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인 부역을 한 것인지는 현재로선 본인만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일제 식민국가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만주국 환상곡’을 작곡, 공연하고 나치들을 앉혀놓고 ‘일본 축전곡’을 감동스럽게 연주했는가 하면 유럽에서 활동할 때는 일본 첩보원에 포섭돼 2년 반동안 한 집에서 같이 살았다는 사실은 그가 일제와 나치의 고급나팔수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도 남는다.

논란의 본질에서는 벗어나지만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새해 벽두부터 다른 것도 아닌 애국가를 들고나와 국민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기고 있는 이해영 교수가 소설가 공지영의 세 번째 이혼한 남편이자 유명 방송인(MC) 허수경의 세 번째 재혼 남편이라는 점도 세간의 관심으로 회자되며 안익태 친일논란에 한 몫하는 것도 이채롭다. 허수경이 자신의 제주도 삶을 소재로 쓴 책 <왜 사느냐면, 제주도에>는 요즘 트렌드라는 제주앓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안익태의 친일논란을 접하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의문에 빠지게 된다. 왜 우리는 아직도 친일청산은커녕 친일의 한가운데서 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는 언제까지 ‘가짜’를 가짜라 부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이 것의 일단을 최근 불거진 홍준표와 황교안의 공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교안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자 홍준표가 “도로 병역비리당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냉소의 일침을 가했다. 황교안은 1980년 7월, 만성 담마진 이른바 두드러기 질환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10년간 신체검사를 받은 365만 명중 이 질환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은 4명이라고 한다. 100만분의 1의 확률이다. 보수의 가치를 재건하겠다고 나선 황교안이라면 당연히 군대를 이수했어야 가짜가 아닌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고, 우리는 이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냉정하고 냉혹한 판단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안익태가 못내 눈에 밟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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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 2019-02-14 11:17:48
친일보다 친중은 더 나쁘다 애국가 아무문제없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에서 벗어나라 거짓된생각과 말 버리라 정부가 얼마나 경제를 망치고 실업자를 만들고 청년과 장년과 노년의 일자리를 없게하는지 무능력함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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