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았다고? 그런 새빨간 거짓말 반드시 밝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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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았다고? 그런 새빨간 거짓말 반드시 밝힐 것”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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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스님 사망에 유족 타살의혹 제기, 수사 불가피

법주사 스님의 사망사건에 대해 유족도 타살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해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충청리뷰의 취재에 대해 스님이 입원, 사망한 병원측과 경찰 관계자는 유족의 연락처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함구했는데, 예상대로 어렵게 수배된 유족은 타살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검찰도 최근 유족측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주사에서 수행중이던 도광스님(속명 이원화·49)이 갑자기 보은 Y병원으로 후송돼 이틀만에 숨을 거둔 것이다.

   
이 죽음을 놓고 유족과 동료 스님이 타살 내지 구타 의혹을 제기했지만 사체는 당일 화장돼 처리됐다. 처음 의혹이 제기된 것은 죽은 도광스님의 사체 전신에 나타난 피멍자국 때문으로, 병원과 경찰은 이를 알콜중독자의 사망시 나타나는 일종의 반점현상으로 보고 단순 병사 처분했다. 실제로 죽은 도광스님은 평소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 때문에 당뇨와 간장 및 신장 계통의 질병을 갖고 있었다고 병원측은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피멍’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죽은 도광의 은사인 삼성스님(공주시 계룡산 대자암)이 지난 10월 초 각계에 진성서를 제출함으로써 이 사건이 뒤늦게 논란을 빚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에 “편하게 해달라”

충청리뷰는 현지취재를 거쳐 지난 353호(11월 6일 발행)에 이를 기획기사로 다뤘지만 타살 내지 구타 의혹에 대해선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했다. 법주사와 병원 경찰측이 강력 부인함에 따라 평면적인 의혹제기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법주사측은 수행중에 술을 가까이 하는 도광스님의 처신을 문제 삼아 승복과 승려증을 박탈한 후 산문송출(절에서 쫓아 냄)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구타나 타살의혹에 대해선 완강하게 부인했다. 병원과 경찰 역시 구타로 의심할만한 특별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말해 규명이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사건 당시 유족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친형 이원호씨(58)의 진술은 이런 주장을 되엎었다. 천안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이씨는 도광스님이 사망하기 전 가족중에서 가장 먼저 병원에 도착, 전후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법주사와 병원 경찰측이 하나같이 구타의혹을 부인한다는 말을 전해듣자 마자 “모두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모든 것을 똑독히 안다”고 분개했다. 그는 기자의 취재 요청에 신분 및 사무실까지 먼저 확인할 정도로 신중했다.

이원호씨가 보은 Y병원에 도착한 것은 동생 도광스님이 죽은 당일인 6월 11일 오전 11시 쯤이다. 이 때만해도 동생은 의식이 있었고 몇마디 얘기까지 나눴다. 하지만 워낙 상태가 위독해 그후 서너번 의식을 잃었고, 그 때마다 병원측이 약물(이씨는 강심제로 추정)을 투여하며 심장을 강하게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간간이 의식을 되찾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통증을 이기지 못한 동생이 “편하게 해달라”고 되뇌이게 되자 소생술을 멈춰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흥분해 떼밀리는 사이에 단순 병사 처리”

이 때 원호씨가 동생한테 들은 분명한 얘기는 “세명한테 맞았다”는 것이다. 원호씨는 “동생의 몸 상태가 너무 참혹해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누구한테 맞았냐고 채근했지만 그 대답은 끝내 안 했다. 머리에 붕대가 둘둘 감겨져 있었으며 붕대 밖으로 피가 스며 나온 흔적도 역력했다. 왜 저러냐고 의사(병원장)한테 물었더니 머리가 깨졌다고 말했다.

이 때 병원장이 갈비뼈 3개도 나갔다고 얘기했다. 이 자리엔 경찰 관계자도 함께 있었다. 법주사에서도 책임자인듯한 스님이 병원으로 찾아 왔는데 이 스님으로부터 동생이 술에 취해 법주사에 들어 온 것을 3명을 딸려 밖으로 내 보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이 동생을 폭행했을 것이라고 따져 물었더니 말을 얼버 무렸다. 동생이 죽고 나선 다른 형제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잔뜩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떼말렸다. 그러는 사이에 동생은 단순 병사로 처리돼 부검없이 화장처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는 동생이 맞아 죽은걸로 확신하고 계속 문제를 제기했지만 형제 중 일부가 부검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병원과 경찰이 단순 병사로 처리한 것이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진실

이원호씨의 형제는 모두 8남매이고 이중 스님이 3명이나 된다. 병원엔 6명 정도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광의 누님인 희유스님(속명 이복수·충남 온양 향적암 주지)은 중국 출타중이었다가 뒤늦게 얘기를 전해 듣고 격하게 따지면서 도광 은사인 삼성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하게 됐던 것. 검찰은 경북 성주에서 농사를 짓는 큰형 이원숙씨(70)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으나 원숙씨가 처음부터 현장에 있었던 동생(원호)에게 알아 볼 것을 주문했다. 원호씨는 “당시 분위기로는 법주사 병원 경찰 어떤 곳도 믿을 수 없다. 의심스러운 게 많았다. 검찰이 부르면 모든 것을 있는대로 얘기하겠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면 삼척동자라도 진실을 알아 챌 것이다”고 말했다.

이원호씨가 병상에 누워있던 동생의 상태를 진술한 것은 병원과 경찰 주장과 너무 다르다. 보은경찰은 “무릎 등 부분적으로 일부 찰과상 정도는 확인됐어도 전신에 멍이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찰과상은 평소 죽은 사람이 알코올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누구한테 맞아 다친 것으로 보인다. 구타를 의심케 할 특별한 징후는 없었다”고 밝혔었다. 병원 또한 “병원에 후송됐을 때 몸의 다섯 군데를 X-RAY 촬영했지만 타박상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전신에 피멍이 들 정도로 몸에 이상이 있었다면 왜 보지 못했겠는갚라고 오히려 의문을 던졌다. 형 원호씨가 본 것은 머리에 감긴 피묻은 붕대에다 전신의 피멍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동료 K스님도 기자에게 “어디라고 할 것없이 온몸이 시퍼렇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너무 징그러워 밖으로 나가 버렸다”고 진술했다. 형 원호씨가 본 동생의 모습도 “마치 영화에나 나오는 환자처럼 머리에 피묻은 붕대가 감기고 역시 역겨울 정도의 피멍이 들었다”이다.

“맞지 않았으면 이처럼 비참하게 안 죽어”

이에 대해 원호씨는 “백주대낮에 여러 사람들이 목격했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며 분개하며 여의치않으면 앞으로 본인이 직접 문제를 제기할 뜻도 시사했다. 원호씨의 얘기는 구타나 타살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당시 병원관계자에게 확인하니 동생이 입고 있던 추리닝이 완전히 흙투성이었고 물에 젖어 있었다고 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동생은 누군가에 집단으로 밟히고 맞은 게 확실하다. 심폐소생술을 포기한 후 의사(병원장)에게 왜 죽었냐고 물었더니 결정적 사인은 타살이 아니라 지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때리지 않았다면 이처럼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게 아니냐고 따지니 의사는 말을 못하고 웃기만 했다. 설령 동생이 평소 술을 가까이 해 알코올중독과 지병이 있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제발로 걸어서 법주사를 찾아 간 사람이 왜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어 죽었겠는갚라고 반문했다.

Y병원이 차트공개를 거부하며 제시한 사인은 ▲직접사인 심정지 ▲중간선행사인 악액질, 간장 및 신기능장애 ▲선행사인 만성주정중독증, 간경변증 등이었다. 그러나 당시 죽은 도광을 진료한 곽모 병원장은 사건 후 담당 간호사와 함께 퇴직했고, 병원측은 곽씨의 연락처와 소재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밝혀 의문을 증폭시켰다. 어쨌든 약물투여와 심폐소생수술까지 할 정도로 심각했던 환자를 멀쩡했다고 주장하는 병원과 경찰의 입장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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