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사야 되니까 내일은 10만원 더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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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사야 되니까 내일은 10만원 더 가져와’
  • 충청리뷰
  • 승인 2002.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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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나 학교 주변에서 상습적으로 금품을 갈취하거나 동료학생들을 괴롭히는 학원 폭력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는 모두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쉽게 피부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방관자적 입장임도 분명하다.
지난 5일 청주동부경찰서에 의해 적발된 한 고교생의 학원 폭력 사례는 아주 단순하지만 얼마나 끔찍하게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폭력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병들어 가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청주 동부경찰서는 지난 5월 초 중학교 때부터 급우들을 협박 또는 폭행하여 10개월 동안 155회에 걸쳐 490여만원의 금품을 빼앗은 모 고교 1년 정모(16,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군에 대해 폭력행위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어찌보면 단순 갈취 사건으로 보이지만 정군이 아무런 죄의식없이 폭력의 강도를 높여가는 과정과 그 앞에 상처받아야 했던 피해학생들의 처지를 돌이켜 보면 섬뜩함을 던져준다.

정군은 지난해 7월 중순 자신이 다녔던 모 중학교의 수돗가에서 같은 반 학생인 정모(16)군이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얼굴을 때려 실신케 하면서 힘을 과시했다. 이후 급우들을 마치 하인을 대하듯 ‘물 떠와라’책 가져와라’등 갖은 심부름으로 같은 반 학생들을 괴롭혔다.
이들 피해자 중 한 명인 정군은 계속해서 피해를 당하자 담임교사에게 다른 반으로 옮겨달라고 요구를 했지만 ‘반은 한번 정하면 옮기는 예가 없다’는 이유로 끝내 거절당했다. 이에 도저히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정군는 스스로 학업을 포기한 채 자퇴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정군이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정군은 친구를 시켜 자퇴한 정군을 찾아오도록 했고 찾아오지 못하자 ‘알면서도 숨긴다’는 이유로 그 친구를 폭행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담임교사 선도포기한 채 수수방관

그 뒤 정군의 폭력은 금품갈취로 이어졌다. 2001년 9월 3일 정군은 정군은 같은 반 학생이었던 김모(16)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군이 이를 거부하자 겁을 주어 만원을 빼앗은 뒤 “내일부터 무조건 하루에 2만원씩 나한테(돈을) 바쳐라, 안그러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 다음날부터 매일 2만원에서 10만원씩을 빼앗았다. 정군의 폭력이 두려웠던 김군은 자신의 부모가 운영하는 철물점의 금고나 지갑에서 돈을 훔쳐 매일같이 정군에게 바쳤다.
정군의 위협과 폭력에 시달리던 김군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정군에게 돈을 바쳐야 했다. 어느날 정군은 김군의 돈 2만원을 빼앗은 후 “내가 학교에 늦게 오니까(지각을 하니까) 내일부터는 돈을 내 서랍(학교사물함)안에 넣어놓으라”고 명령했다. 김군은 정군의 말에 따라 등교하자마자 2만원 씩을 정군의 서랍 안에 넣어 두어야 했다.
정군는 다음날 부터 2만원씩 매일 서랍안에서 빼내갔고 돈을 빼내간 다음에도 가끔씩 돈이 더 필요 하다며 김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 까지 따라가 돈을 더 빼앗기도 했다. 그리고 혹 돈을 못주어 밀리는 날이면 “그동안 못받은게 있으니까 4만원씩 가지고 와라”하고 말했다. 더욱이 월요일에는 “일요일것 까지 달라”고 하여 2만원씩 더 주어야 했다.
정군은 그러나 이에 양이 차지 않았다. 툭하면 “내일 옷을 사야된다. 10만원만 더 가지고 와라”해서 이를 빼았았고,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2001년 12월 24일에는 전화를 걸어 ‘크리스마스 이브라 친구들과 놀러가야 되니까 5만원만 더 가지고와라’고 해 돈을 가져갔다.

몇달 간 거의 매일 집에서 돈을 타다(혹은 훔쳐다)정군에게 바친 김군.
김군는 정말이지 정군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김군는 정군를 일주일간 피해다녔다. 그러나 그의집 앞에서 기다린 정군에게 잡힌 김군에게 돌아온 것은 수십회에 걸친 무차별한 폭력이었다. 일주일간 밀린 돈까지 모두 주어야 했다.
김군는 정군에게 시달리면서 수없이 주위에게 알리려 했다. 그러나 학교등에 알려야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김군는 부모님께 알리려 했지만 정군의 보복이 두려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런사이 정군의 범행은 계속되어갔고, 김군은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런 정군의 범행은 김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중에도 반 학생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빼앗았다. 같은 반 학생인 정모(15)군를 전화로 자신의 집에 오게해 2만원을 빼았기도 했고,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가 하면 15만원을 가져오라고 하였는데 10만원만 가져왔다는 등의 이유로 몇몇의 학급 학생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 했다. 정군는 한마디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나 어느덧 중학교를 졸업 했다. 김군등 같은반에서 피해를 당했던 학생들은 날듯이 기뻤다. 졸업이 그동안 꿈꿔왔던‘해방’의 날이라 여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군은 끈질겼다. 졸업후에도 이 같은 일은 계속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아무 대책없이 흘렀다.

아들 씀씀이 의심한 김군 부모 신고로 밝혀져…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정군의 폭력은 평소 아들의 씀씀이나 행동을 의심했던 피해자 김군의 부모가 이를 눈치채 신고함으로써 끝이 났다. 결국 정군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정군는 모든걸 포기한 듯 고개를 떨군 채 그 동안의 범행을 순순히 시인했다.
정군은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단둘이 살고있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성격이 점점 변했다. 공부도 잘하고 착한 학생이었던 정군은 불량기가 있는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성격또한 폭력적으로 변해만 갔다.
정군이 같은반 학생들을 괴롭힌 것도 이무렵 부터 였다. 자기맘에 들지않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주먹을 휘둘렀다. 중학교 3학년이 돼면서 학교의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다.
동부서의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정군에 대해 조사하는데 정말 너무 죄질이 안좋아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까지 악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며 “현재 밝혀진 갈취현금만도 중학생 으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액수다. 학부모와 교사등 학생 주변 어른들이 도대체 무슨일에 관심을 갖고 사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교교사의 권위가 사라지면서 학교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와 지고 좋아졌지만 반면 교사들이 학생을 관리하기가 힘들어져 요즘 불량학생들의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 경찰도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시내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어릴적 당한 정신적피해를 벗어나지 못해 성인이 돼어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을 가끔본다”며 “학생시절 장기간에 걸친 폭행으로 인한 불안등의 기억은 피해자들에게 평생 상처로 남을 수 있고, 따라서 정신건강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박재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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